《달항아리 연재25》
계절이 바뀌고 있습니다. 환절기는 늘 격동의 시간입니다. 겨울의 알껍질을 뚫고 봄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배를 째고 나오는 끈질긴 생명력에 겨울은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습니다. 우수 경칩을 지나고 나면 겨울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됩니다. 제 아무리 포호해도 물오른 버들강아지가 피식 비웃습니다. 이제는 누가 뭐라 해도 봄입니다.
작년 이맘때는 벌써 매화가 피고 지고, 목련이 꽃몽오리를 터뜨렸었습니다. 예년 같았으면 언론에서 기상이변이라고 생난리를 쳤을 텐데, 정치에 모든 눈길을 빼앗겼습니다. 사람들은 얼어붙은 경기로 다들 먹고사는 일에 정신이 팔렸습니다. 세상은 계절이 오고 가고 꽃이 피고 지는 것에 관심을 잃었습니다.
이제는 떠나는 겨울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시간입니다. 나는 겨울의 머리맡에서 겨울의 임종을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 겨울의 마지막은 후회로 점철된 통회의 시간입니다.
《깨달음》
죽음에 다달아서야
겨울은 깨닫는다
어린 것들에게
좀 더 따뜻할 걸
한파 중독에서 벗어나
가끔은 봄바람처럼 살랑거릴 걸
혹독한 겨울을 사랑한 이들에게
따뜻한 이상 겨울이란 욕도 먹을 걸
초겨울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에
뒤늦은 깨달음은 영안실안
냉동실 같이 차갑다
누구나 인생의 겨울에 다다르면 반성지문을 지날 것입니다. 적어도 나는 이빨 빠진 호랑이로 뒷방 늙은이로 밀려나는 혹독한 겨울이 안되길 소망합니다. 욕 먹어도 따뜻한 겨울이 되렵니다.
다들 '콜롬부스의 달걀'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 보셨지요? 일단 하고 나면 매우 당연해 보이지만, 하기 전에는 일반 사람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기발한 발상을 말합니다.
놀라운 성공의 축하 이면엔 늘 시기와 질투가 있습니다.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온 후 본국에서 축하연이 열렸습니다. 대부분은 그를 축하해 주었으나 일부는 그를 질투했습니다. 그의 성공을 배 아파하는 이들은 주로 귀족들이었습니다. 자기보다 못났다고 생각하는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니! 한낱 직공의 아들일 뿐이었는데, 그 콜럼버스가 자신들보다 대단한 대접을 받았으니 시기는 당연한 것입니다.
신대륙의 발견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러자 콜롬부스는 그들에게 달걀을 주며 세워보라고 했습니다. 다들 끙끙거리며 세워보려고 했지만 아무도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콜럼버스가 달걀을 받아 한쪽 끝을 깨뜨려 세웠습니다. 그러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또 비아냥거렸지요.
'신대륙의 발견도 이와 같이 누군가 미리 발견한 항로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처음 발견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는 말로 그를 비난하던 사람들을 침몰시켰습니다.
달걀을 깨서 세운 일화가 현대에는 반론도 많습니다. 실제로 이 일화가 콜롬부스의 사건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또 문제 제기자가 콜럼버스 본인이었다는 것에 맹점이 있습니다. 즉 다른 이들은 달걀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세우려고 노력한 반면 콜럼버스는 아예 밑 부분을 깨버리고 세웠습니다. 이는 곧 '세울 수만 있다면 어떠한 파괴적 행위도 정당화된다'는 식의 결과를 정당화하는 유럽 침략주의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롬부스의 달걀 일화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줍니다. 콜롬부스의 달걀은 현재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내가 달항아리 크리스탈잔을 만들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콜롬부스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달항아리 모양의 잔이네' '입구가 좁아서 세척하기 어렵겠다' '배가 볼록해서 마시기 불편하겠다' 정직한 조언으로 위장한 저들의 교묘한 비아냥을 들으면서 난 콜롬부스의 달걀을 생각 했습니다.
《콜롬부스의 달걀》
달걀을 세워보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나 할 순 없는 일이다
입은 쉬우나 몸은 어렵다
달잔이 형체를 갖고 짠~
세상에 첫모습을 드러냈다
나의 콜롬부스 달걀이다
왜 달항아리 연재에 콜롬부스의 달걀 얘기를 하는지 궁금해 하실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센스있는 분들은 눈치챘겠지요. 오늘 소개할 달항아리가 달걀달항아리입니다. 생긴 모양이 정말 계란 같습니다. 《예각입술 달걀달항아리》를 처음 봤을 때, 문득 뚱뚱한 임산부 아내가 보였습니다.
‘마이달링’
아내가 내 핸드폰에서
자기 전화번호를 확인하고는
행복하게 웃는다
내내 기분이 좋아 보이던 그날 저녁
아내에게 고백했다
“여보, 사실 마이달링은
나의 달항아리에 ‘ing’를 붙인 거야”
아내의 낮빛이 변하는 걸 보며
급히 부연 서명을 해야 했다
“당신이 점점 후덕한 달항아리를
닮아 간다는 좋은 뜻이지......
몸매가 아니라 성격이.....
당신이 내 인생의 최고의
달항아리라는 의미라고......”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 졌다
결국 밥 먹다 뒤지게 혼났다
‘사랑하는 아내’로 바꿀까 했지만
여전히 아내는 ‘마이달링’
누가 뭐래도 엄연한 사실이니까
이 달항아리는 타원형 몸통에 유약이 골고루 두껍게 씌워져 반질반질 윤기가 흐릅니다. 높이 45.5cm, 몸체지름 41cm, 입지름 20cm, 밑지름 16cm로 지극히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유약 아래에 초벌구이로 남은 물레자국과 손자국이 몸체 전반에 걸쳐 나타납니다.
중간에 이어 붙인 흔적은 말끔히 다듬어져 외양에서 보면 한번에 감아 올린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항아리 안쪽에 이어붙인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진 아내를 마주할 때처럼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체면에 걸린 것처럼 달멍에 빠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내를 닮아 유독 친근하게 느껴지는 달항아리입니다.
달항아리 연재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현재에 발을 딛고 있지만 앞으로도 늘 미래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우리의 배는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매주 바다로 떠납니다. 이 시대에 '콜롬부스의 달걀'이 되어 여러분과 함께 신대륙을 찾고 싶습니다. 설령 도착한 그곳이 신대륙이 아니라 중국의 남서부 끝이든 인도라도 항해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달항아리여!
너는 오늘도 신대륙을 향해 닻을 올리는구나!
미래를 품은 콜롬부스의 달걀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