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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 연재17

by 이종열

《달항아리 연재17》


여보, 살 빼지 마라

젊은 시절 한때는 나도

잘록한 청자를 좋아한 적이 있었지

나이가 들수록

후덕한 백자 달항아리에 끌린다

수려하지만 까칠한 청자보다

펑퍼짐하지만 순한 달항아리가 백배 낫다

여보, 괜히 빠지지 않는 살

억지로 빼면서 짜증 부리지 말고,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마음 편히

지금의 달항아리 몸매를 유지하시게

버드나무 가지처럼 가는 것보다

오래오래 살아남는 건 살찐이지

풍만한 마나님 허리가 장땡이지

없는 것을 가지려 애쓰지 않고

이미 가진 걸 넉넉히 누리는 것이

달항아리의 마음 아닌가,

여보, 부디 보고 또 봐도 좋은

달항아리 되시게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달항아리를 보고 첫눈에 반해 쓴 시입니다. 여러분은 이 달항아리를 보고 어떤 느낌이 듭니까? 다른 사람의 감상에 신경 쓰지 마세요. 각자가 살아온 인생길이 다르기 때문에 절대 같은 느낌일 수 없습니다. 오늘 제가 쓴 달항아리에 대한 느낌도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많은 달항아리 감상평 중 하나일 따름입니다. 그냥 당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마음 가는 대로 느끼시면 됩니다.

사람들이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에 너무 관심을 갖고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했다는 것이랍니다. “남들이 알아주는 삶 대신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걸.” 누구나 한 번뿐인 인생이고, 누가 대신 살아주지도 않을 인생인데, 주도권을 잃고 자신이 살고 싶은 인생을 못 산 것에 대한 통탄하는 말입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슨 일을 할 거냐?” 예전에 참 많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당신은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고 싶나요? 스피노자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습니다. 그건 스피노자의 생각입니다.

나는 마지막 하루라면 맨 먼저 오늘까지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렵니다. 그다음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함께 살아준 것에 감사를 마음을 먼저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시간에는 달항아리를 보면서 시를 쓰다 죽고 싶습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직감적으로 살아있음이 좋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산 자 중에 참예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라.” 약 3천 년 전에 솔로몬 왕이 쓴 전도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지금 살고 있는 현재가 되게 소중하고 감사한 것이 됩니다. 언젠가는 누구나 맞이할 죽음입니다. 살아 있는 자체가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매일 “기쁨으로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일상의 행복을 누리고 살려 합니다. 그 행복들 가운데 달항아리가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달항아리는 『달항아리 아트뮤즈』에서 소장하고 있는 17세기 달항아리입니다. 앞서 15회 연재까지 살펴보았듯이 세상에 알려진 모든 달항아리는 18세기 달항아리들입니다. 오늘까지 골동계에서 17세기 달항아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글을 쓴 사람은 없습니다. 왜일까요? 17세기 달항아리에 대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17세기 달항아리는 총 3점이 있습니다. 두 점은 달항아리 아트뮤즈에서 소장하고 있고, 한 점은 양산에 살고 있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17세기 백자의 특징은 태토가 안 좋아서 백자 색깔이 시멘트 빛깔의 회백자입니다. 입술은 45도 각도의 예각입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달항아리는 높이는 47㎝, 몸통 지름이 44cm, 아가리 지름과 밑지름이 16㎝로 동일합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이 입술과 굽입니다. 동일한 지름을 갖고 있어서 탁월한 균형미를 보여줍니다.

몸체 중앙부에 이어 붙인 자국이 있으며, 아래부분 굽 가까이에는 유약이 두껍게 흘러내린 눈물 자욱과 얇게 발린 부분이 공존하면서 작은 요변이 소용돌이 치고 있습니다.

얇은예각입술 둥근달항아리로 이름 지었습니다. 현재 국보 3점, 보물 4점, 해와 박물관 소장 달항아리와 국내외 경매에서 낙찰된 달항아리는 전부 18세기 달항아리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이 달항아리는 현존 최고의 17세기 달항아리로 평가됩니다. 얇은예각입술이 350년이 넘도록 파손되지 않고 원형이 그대로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나는 볼 때마다 감동합니다.

이 달항아리는 단순한 도자기를 넘어서 우리의 인생과 너무 흡사합니다. 350년의 세월을 견뎌낸 이 예각입술 둥근달항아리처럼, 당신도 나도 위태로운 세상살이에 살아남아야 합니다. 이 달항아리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오늘을 사는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누구나 한 번뿐인 인생에서 남 눈치 안 보고 자기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온몸에 남아 있는 수많은 상처와 불완전성을 품고 자기만의 균형과 은은한 회백자의 빛깔을 갖고 있습니다. 가시밭길을 걷는 우리 삶은 온몸이 상처투성이입니다. 그렇다고 아파하면서 주저앉아 울고 있을 순 없잖아요?

인생길에서 남들과 똑같은 시멘트 블록으로 찍어낸 집이 아니라 부디 자기만의 집을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산다는 자체가 상처입니다. 죽을 때까지 상처를 받겠지만, 그 모든 상처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후회 없는 삶이면 좋겠습니다. 모든 상처와 고통을 몸에 품고 오늘을 사는 당신이,

부라보! 얇은예각입술 둥근달항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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