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량의 도쿄 여행기

다섯 째날, 아직도 생생한 블루블루 블루 요코하마

by 이파리북스


[6박 7일간 여자 혼자 떠난 도쿄 여행기]

ALONE IN THE 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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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도 전에 결론을 말하자면, 요코하마는 단연 최고다. 포스팅도 할까말까 한참 망설였다. 요코하마 너무 좋아서, 글로 쓰기가 너무 아까웠다.


요코하마로 가기 전 날 저녁,

원피스 덕, 지브리 덕, 야경 덕, 책 덕, 맥주 덕을 다 실현시켜 버려서 더 이상 남아 있는 덕력이 없었다. 벌써 여행 다섯째 날.


'내일 뭐하지......'


를 고민하면서, 보통 도쿄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 오다이바와 조금은 낯선 요코하마 사이에서 고민을 했다.


라면만드는 요코하마냐, 석양이 멋진 오다이바냐, 사실 그리 긴 시간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 석양시간과 오다이바 전망대 입장마감 시간이 맞지 않아, 오다이바를 쉽게 포기했다. 딱히 두 곳 모두 꼭 가볼거야!!! 생각하던 장소가 아니라, 둘 중 어느 곳이든 괜찮았다.


도쿄역에서 JR 도카이도선을 타고 요코하마로 갔다. 역시나, 헤맸다. 도쿄역에서. 누군가 급행 열차가 오는 플랫폼까지 직접 데려다 줘서 다행이었다. 도쿄역만 가면, 바보가 되는 병에 걸렸다.


20분을 달려 요코하마역에 도착했다. 요코하마역에서 한글 지도를 받아들고, 미나모토선으로 갈아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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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오사카 여행에서도 느낀거지만, 일본은 대관람차가 곳곳에 있다. 쉬는 날이었는지, 코스모월드는 닫혀있었다. 열려있었다해도 겁많은 나는 타지 못 했겠지만......


날씨가 참 좋았다. 지난 날 동안 흐리고, 비오고, 구름잔뜩 낀 날 뿐이었는데 쨍하게 비치는 햇빛에 서울에서 준비 해 간, 선글라스를 드디어 꺼내썼다. 파란 하늘에, 반짝이는 바다. 도쿄에서 살짝 벗어난 오다이바는, 도쿄와는 느낌이 완전 다른 도시였다.


첫 번째 목표는 컵누들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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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엔의 입장료를 내고, 한 개에 300엔 하는 컵을 자판기에서 뽑아 소독을 하고, 안내받은 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안내받은 곳으로 이동해, 안내받은 대로 라면을 채워 넣으면 된다. 안내받은 대로 그대로만 하면 내 손에 컵라면이 들려있다. 나만의 컵라면.


컵누들 뮤지엄 테라스로 나와, 노트에 적은 버킷리스트에서 또 한줄을 쭉 그었다. 라면을 만들고 나서의 계획이 없었다. 바다 소리가 좋다, 바람이 좋구나, 햇살도 따뜻하네?


그래, 그냥 걷자.


대충 컵누들 자부심에 꽉 찬 사장님의 개인 박물관 느낌 가득한 뮤지엄을 쓱 돌아보고, 해안가 산책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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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그늘 밑에서, 바다를 보면서, 길을 따라 걸으면서, 신난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그들처럼 신난 표정을 한껏 지으면서 도쿄에서의 반 정도 되는 걸음 속도로 바다를 따라 산책을 했다. 이토록 여유로운 여행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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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렌카 붉은 벽돌 창고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오산바시 여객터미널로 걸었다.


사실, 딱히 그 곳이 목적지는 아니었다. 그냥 길을 따라 바다를 보면 걷다보면, 구경할 곳이 그냥 있다. 내키면 들어가서 구경하면 그뿐이다. 요코하마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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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요코하마.


느낌 좋은 저 곳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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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 터미널 상판이 나무로 되어있다. 삐그덕 삐그덕 걸을 때 나는 소리가 좋았다. 비 맞으면 뒤틀리지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옥상 끝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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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할나위 없이 날이 좋았다.

바람이 불었고, 적당히 구름이 그림자를 만들었다가 사라졌다.


여객 터미널 옥상에 오랫동안 앉아있었다. 오고가는 뱃소리도 듣고, 일본어로 뭐라뭐라 하는 안내방송도 듣고, 지나가는 유람선도 보고. 나보다 먼저 와서 나보다 늦게 내려 간 아저씨 뒷모습도 보고. 사람들이 평화로워 분위기가 평화로운 것일까, 평화로운 분위기가 사람들을 평화롭게 만드는 것일까.


뭔가 꼭 봐야하고, 뭔가 꼭 이뤄야 하는 그런 도쿄 여행이었다. 어쩌면 조금 지쳤을지도 모르겠다. 서울에서도 그렇게 부지런히 돌아다니지 않는 내가, 낯선 도시에서 하루도 쉼 없이 돌아다녔으니. 맞다. 나는 지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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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많아 지는 사람들에 또 시끄러워 질 까봐 터미널 내부로 들어갔다.


%BC%BF%C4%AB1.png 내가 만든 라면을 덜렁덜렁 들고서



내부는 별거 없었다. 넓고, 소리가 울렸고, 어딜가나 있는 기념품 샵이 많았다.


밖으로 나와 또 걸었다. 해가 질 때까지는 아직 한참남았다. 책을 챙겨가길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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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들의 조경은 뭔가, 딱! 딱! 떨어지는 느낌이다. 큰 나무가 정말 딱 떨어지게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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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음 모습의 나무 밑에선,

똑같이 여유로운 맘을 가진,

똑같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애기 데리고 산책나온 젊은 엄마들, 그림 그리던 할아버지.


해안가에는 의자가 많다. 나도 의자에 앉아 책을 꺼내 봤다.



사실, 두 페이지 정도 글씨만 읽었다. 책을 좋아하는 나 지만,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서는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자꾸만 사람들에게 눈이 갔다.


또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다리가 안아프다. 살살 천천히 걸어서 그런가보다.


솔직하게 말해서, 도쿄 시내에서의 여행은 이렇게 살살 걷지 못 했다. 그 곳도 대도시 인지라,

바삐 걷는 직자인들 사이를 나만 혼자 천천히 걷는 게 민폐처럼 느껴졌다. 여행자 주제에 참 쓸데없이 도시의 사람을 걱정하는 오지랖을 떨었다.

사실 도시는 천천히 걸으며 구경할 만한 것도 없다. 서울과 같은 느낌이다. 나는 도시에서는 감흥을 잘 느끼지 못 한다.


그런데 요코하마에 오고나서야 천천히,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걷다가 멈춰가면서. 앉아서 쉬어가면서

그렇게 걸을 수 있었다.


도시보다는 나무가 많은 곳을, 나무가 많은 곳 보다는 물이 많은 곳을, 그냥 물이 많은 곳 보다는

짠 물이 많은 바다를 좋아한다.


나름대로는, 지리산에서 나고 자라서 라고 생각하는데......


의욕적으로 걷지도 않았다. 목표가 있어서 걸은 것도 아니다. 그냥 멍하게 다리가 알아서 걸었나보다. 오른다리가 나가면,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왼다리가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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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사진을 잘 찍어주려고 우스꽝스럽게 선 아저씨. 사진을 다 찍고 나서 할아버지보다 더 큰 소리로 웃으면서 찍은 사진을 할아버지에게 보여줬다.

이 사진이 자꾸만 눈이간다. 귓가에 소리 없이 입으로 웃는 할아버지의 웃음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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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할머니가 생각났다. 좋은 구경 많이 시켜드리고 싶은데, 쉽지않다. (지금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이번 5월 18일이 첫 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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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찍는 아줌마의 표정이 더 꽃같다.


인형박물관으로 갔다. 시간을 때워야했다. 야경을 보기위해! 걷다가 목표가 생겼다.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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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국의 인형이 전시되어 있었고, 특별전으로 사무라이 인형전시도 하고있었다. 그냥 들어간 곳 치고는

아주 훌륭했다. 4층 소극장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하고있었는데, 시간이 잘 맞아 들어가서 한시간 짧은 공연을 보고나왔다.


이번 여행은 운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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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무슨 전망대에서 보면 야경이 더 멋지다는데, 나는 바닷소리도 같이 듣고 싶어서 다시 오산바시 여객터미널로 돌아왔다.


해가 저물때 쯤, 아까 그 블루 요코하마 옆으로 검은 고양이 두 마리가 앉아있었다. 곧 아저씨가 다가와 밥을 줬다. 매일 이녀석들의 밥을 챙겨주시나 보다.


이번엔 옥상으로 올라가지 않고, 터미널 내부 테라스로 향했다. 바람이 옥상보다 적게 분다.

그 곳은 나와, 야경을 찍는 할아버지 뿐이었다. 의자도 있고. 오산바시여객터미널에서 야경을 보려면,

이 테라스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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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손에 꼽을 만큼 너무 멋진 야경이었는데, 사진으로 제대로 담지를 못했다. 직접 가서 봐야한다 역시.


한참을 테라스와 내부를 들락거리면서 야경을 봤다. 맥주를 한 잔 한 뒤라 그런지 더 좋았다.


바람은 적당했고, 바다에 비친 빛은 아른아른 흩어졌고, 또각또각 걸어오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는 환상적이었고, 나는. 그냥 다 좋았다.


벌써 다섯째 날이구나...... 다이어리를 꺼내 오늘 일기를 썼다. 지금 읽어보니, 순


좋다. 너무좋다. 진짜 좋다.


이 말만 가득하다. 하지만 그만큼 좋았다.


후에, 돌아와서 지인들에게 요코하마 너무 좋았어! 얘기 했더니,


"그 날 날씨가 다른 날 보다 좋아서 그런거 아냐?"

라고 물었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여행에서 느끼는 좋고 나쁨의 감정들은 어쩌면, 그 날의 날씨, 공기, 온도, 바람 이런 것들도 한몫 할 테니까.


아침부터 밤이 될 때까지 머물렀던 요코하마. 다음에 오면, 요코하마에서 이틀 정도 묵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시간으로 바뀌는 대관람차의 불빛을 쫓아 또 다시 천천히 걸어 지하철을 타러 갔다.




나에게 혼자 여행이란?


그냥, 좋은 거






덧,



점심은 붉은 벽돌 창고에서 먹었지만, 저녁은 관광지가 아닌 다른 곳에서 먹고싶었다. 여행 내내 그랬다. 사람 많은 관광지밥은 별로라, 항상 관광지를 벗어나서 먹었다.


사무실이 밀집한 지역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작은 가게로 들어갔는데, 내가 일어를 한마디도 못하니 주인 총각 둘이 당황해했다.


부엌으로 가서는 자꾸만 번역기를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일본말로 뭐라뭐라뭐라 확신이 서지 않는지

둘이서 쏙닥거리길래, 메뉴중에 사진이 있는 걸로 하나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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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연어덮밥.


음식 사진은 잘 안찍지만, 총각 둘이 어찌나 친절하던지 또 찾아가고 싶지만, 위치를 모른다.


자꾸만 나를 보고 뭐라도 말 하고 싶어 입만 벙긋 거리는 두 사람을 보고 나 또한 사력을 다해 눈웃음을 지어줬다.



덧2,


정말 블루블루 블루 요코하마에 다녀 온 뒤로 블루 병에 걸렸다. 쇼핑 한 옷이 모두 블루블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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