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날, 목적없이 걷기의 달인
[6박 7일간 여자 혼자 떠난 도쿄 여행기]
ALONE IN THE TOKYO
여섯번 째 날이 밝았다. 이제 여행이 끝나간다는 마음에 몇일 더 연장할까..... 깊은 고민에 빠졌다. 돈이 없다. 다음에 다시 오기로 맘을 다잡고, 오늘은 친구들 선물을 사러 지유가오카로 가기로했다.
오늘은 숄더백을 들고나왔다. 손이 거추장 스러운걸 싫어해서 백팩을 야무지게 짊어지고 다녔었는데,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숄더백을 맸다. 실수 였다는 걸 이때는 알지도 못하고, 호텔을 나서기 전 사진을 찍었다.
10시 30분쯤 도착한 지유가오카는 한가로웠다.
11시부터 문을 여는 상점이 많아서, 거리에 사람들이 그냥 앉아있었다. 길 고양이가 골목 가운데 앉아서 꾸벅꾸벅 식빵을 굽고있었다. 지유가오카는 워낙 작아서, 아무 출구로 나와서 그냥 걷다보면 뭔가 상점들이 많이 보인다.
말린꽃을 팔던 상점.
빨래를 널어 놓은 상점
사실, 이런 작은 상점을 구경하는 소소한 멋을 나는 잘 모른다.
사지도 않을 물건에는 관심이 없어서 일까나...... 그래도 친구들 선물을 고르러 나름 부지런히 상점들을 들락거렸다. 그러다가 발견한 투데이즈 스페셜. 에코백을 샀다. 친구들 줘야징.
또 걸었다.
슬슬 지겨워 질 때쯤, 가죽 제품을 파는 가게를 발견하고, 그토록 찾아 헤맸던 가죽 필통을 하나 샀다.
장인이 한땀한땀 손 수 만든 버팔로 가죽 필통이란다.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
걷다보니, 인터넷에서 많이 보던 철길이 보였다.
아주 어릴 때, 왕십리 살던 고모네 집 근처에 이런 철길이 있었는데...... 사실 어릴 때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티비에서 본 걸, 내가 직접 본 거라고 착각하는 걸 수도 있고.
아무튼 띠롱띠롱 전철 온다고 멈추라고 내는 소리가 너무 좋아서 건너지 않고, 한참을 서 있었다.
내 필통도, 친구들 선물도 사고나니 다리가 아파 카페를 찾았다.
전통 가옥에, 다분히 일본스러운 정원을 가진 카페에 들어갔다. 나이 많은 주인장이 밝게 웃으며 맞아줬다.
원하는 곳에 들어가 앉았다.
건너편에 보이는 먼저 온 손님들은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맞으려 문을 활짝 열어놨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걸었다. 주인장이 내 주는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일본에 왔으니 마차를 마셔야 하지 않겠냐는 나름의 생각으로 마차셋트를 시켰다.
녹차라떼를 시킨 걸로 착각할 정도로 고운 거품이 올라간 따뜻한 마차와, 양갱? 인지 뭔지 모르겠는 엄청 달달한 주전부리가 같이 나왔다.
마차는 썼고, 주전부리는 달았다. 바람은 불었고, 기분이 좋았다.
바람이 대나무 발을 천천히 움직였다. 얼마동안 앉아있었는지 모르겠다. 정원도 보고, 하늘도 보고, 마차도 마시고, 눈을 감았다가 다리를 쭉 폈다가.
건너편 손님들이 갔다. 나도 이제 가야지 생각하고 다시 한 번 창가에서 하늘을 봤다.
아까보다 바람이 더 세게 분다.
오늘 일정은 특별날 게 없다. 지유가오카에서 선물을 사고, 벚꽃이 예쁘다던 나카메구로에서 이미 져 버린 벚나무를 보고, 에비스로 가서 맥주 박물관에 가는 일정. 어느 블로거가 살살 걸어가기 좋다는 말에 나도! 그러기로 했다.
일본 사람들은 정원 가꾸는 걸 좋아한다고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다. 정말 예쁘게 잘 정돈 된 정원을 가진
집들이 많았다.
집들이 좋아보였다.
비싸보였다.
일본의 비싼 집을 원없이 구경했다.
나카메구로 까지 가는 길은 아주쉽다.
철길을 따라 쭉 걸으면 된다.
비록 두시간이 걸리지만.
국철이 오고 갔다. 이 때 생각했다. 나는 왜 걷고있나.
걸어도 좋을만큼 가깝다고 했던 그 블로거를 찾아내고싶다. 두 시간을 걷는 건 무리다.
멀리 떠나는 저 놈을 타고싶었다.
물론, 관광지가 아닌 평범한 동네를 구경하고 싶다면 걸어도 좋다.
이런 작은 연못을 끼고있는 작은 공원을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소란스러운 중국인 관광객이 없어 오롯이 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건 장점이다.
한참을 걸어 나카메구로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벚꽃을 다 지고 없었다. 벚꽃이 활짝피면 정말 예쁠 것 같다. 내년 봄에 꼭 와야겠다.
'그래,
마지막 날인데 술이나 몽창 마시자!'
호텔로 돌아와 짐을 내려놓고 근처 작은 술집으로 갔다.
300엔씩 하는 작은 안주를 파는 그냥 술집이었다. 테이블은 끈적했고, 주인아줌마 입에선 입냄새가 났다.
후다닥 마시고 나가야지 생각하고있는데, 단골처럼 자연스러워 보이는 아저씨가 들어왔다. 아저씨는 젊은 아가씨가 앉아있으니 놀랐다며, 말을 걸어왔고. 나는 한국인이고 여행중이라고 말했다. 아저씨는 한국인 친구가 있다고 말하면서 나에게 안주를 시켜줬다.
고마운 마음에 안주를 받아먹다가, 자꾸 사 주는 바람에 더는 안되겠다 싶어 마지막으로 준 생강순을 들고
서둘러 나왔다.
여행중에 몇번 갔던 이자카야로 들어갔다.
닭튀김을 시켜 먹었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회식을 하러 온 직장인이 많았다. 맥주 두 잔을 더 시켜 마시고
호텔로 돌아왔다.
취하지도 않는다. 마지막이라 너무 아쉬웠나보다. 짐을 챙기고 누웠는데도 잠이 오지 않는 마지막 밤이었다.
나에게 혼자 여행이란?
아쉽고, 아쉽고, 아쉬운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