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모순_쁘쯔뜨끄와 책 이야기
모순 (양귀자,살림)
쁘쯔뜨끄의 책 이야기
초등학교 6학년 때, 모순을 처음 읽었다.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영 적당하지 않은 책이었다.
나는 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초등학생 권장 도서 따위를 읽지 않고,
양귀자의 모순을 읽었을까?
뭔가 성숙해 보이고 싶었을까?
나름의 이유를 대 보자면,
일.
시골이라, 서점이 없었다.
이.
작은 학교라 도서관이 제대로 운영되지도 않았다.
셋.
누구도, 초등학생 권장도서목록을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았다.
정도?
때때로 글쓰기 대회에 나가 상을 받으면,
복사 붙여넣기 식의 상장과 함께 도서 상품권을 상품으로 받아왔다.
나름 대회용 글쓰기에 재주가 있었는지,
도서 상품권을 용돈대신으로 쓸 만큼 쏠쏠하게 받아왔었다.
두 달에 한번 남짓, 인월면에서 남원 시내로 놀러 갈 때면,
모아놓은 도서상품권을 들고나가 책을 샀다.
모순도 그렇게 산 책이다.
그때는 모순을 읽는데 한 달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꽤 오랫동안 읽었다.
13살이 이해하기에 책은 쉽게쓰여있었으나,
내용은 너무 모순이었다.
어린 날에 읽은 모순에서 기억나는 딱 하나는 “안진진”.
항상 자신을 부정하며 살아야 하는 여자 안진진.
15년 만에 다시 읽으며, 내 기억 속 “안진진”에 대해 새삼 놀랐다.
그녀가 고작 25살 이었다니.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여자였다니……!!!
고작 25살 인 주제에 두 남자 사이에서 고민하고,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25살이면 아직 한창 애기인데,
여기저기 투정 부리고 엉망진창으로 살아도 충분한 나이인데……
난, 그랬는데!
초등학생 쁘쯔뜨끄의 머릿 속에 그려졌던 그 안진진과
나이를 한참 먹고 난 후 본 그 안진진은
달랐다.
나보다도 더 어린 안진진에 대한 가여움을 마음 속에 품고
모순을 하루 만에 다 읽어 내렸다.
내가 안진진의 진지한 삶의 이야기를 읽는데 하루를 몽땅 써버렸다는 건,
안진진의 생의 외침에 이제야 깊이 공감해서 일 것이고,
나 또한 25살을 지나왔기 때문이고,
이제는 안진진보다 더 커 버린 탓일 테다.
작가 양귀자의 글인데, 가타부타 말할 뭔가가 있을까.
어렵지 않은 문장이 어렵지 않은 플롯으로 어렵지 않게
이 어려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13살에 읽은 모순과,
20살에 읽은 모순,
28살에 읽은 모순은 기억 남는 포인트가 다 다르다.
13살에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억척스러운 어머니가,
20살에는 첫 눈을 얘기하며 슬프게 반짝이는 이모의 눈이 기억에 남았다면,
28살 지금은 너무 일찍 커 버린 안진진이 자꾸만 기억에 남는다.
13살에는 술자리를 즐기던 우리 아빠에게 이야기를 투영시켜 그랬고,
20살에는 내 인생 최고의 낭만기를 살던 시기라,
글 너머 전해지는 슬픈 이모에게서 낭만을 느껴서 일 테고,
지금의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서 인 것 같다.
모순된
삶의 이야기나,
슬픈 진실 같은 건 알고 싶지 않다.
아직은.
그럼에도 쁘쯔뜨끄와 책이야기에서 모순을 제일 먼저 소개한 까닭은
나보다 훨씬 불행한 안진진의 삶이
요즘의 엉망진창 내 삶을
책을 읽은 그 하루 동안 위로해 줬기 때문이다.
적어도,
안진진만큼은 나보다 더 불행하니까.
덧,
책의 내용을 이야기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러지 않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책 이야기야 인터넷 어디를 찾아보든 멋드러지게 정리되어
복사해서 독서감상문을 써서 내도 되겠지만.
이 곳에서는 책과 내 이야기를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