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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쁘쯔뜨끄 May 27. 2016

아, 가여운 조앤

봄에 나는 없었다_쁘쯔뜨끄와 책 이야기


봄에 나는 없었다 (아가사 크리스티, 포레)




지난 번에 보고 온 전시회

‘모든 것이 헛되다 All is vanity’의 벽면에 적힌 글귀가

여전히 머릿속에 박혀서는 틈만 나면 비집고 나온다.


[당신은 진실과 마주할 자신이 있습니까?]



전시회 초입에 적인 이 문구가 왜이리 맘에 걸리던지……

진실과 마주친다는 것이 뭘까?

아니, 진실은 뭘까?



조앤은 혼자 남겨진 시간 속에서 자꾸만 비집고 나오는,

자신의 지나온 삶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진실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남편 뒷바라지, 자식들 키우고, 하인들을 교육시키느라

바쁘게 살던 중 자신에게 온 고마운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조앤의 말에 따르면 말이다.


독자는 조앤에게 주어 진 그 시간이 고마운 시간이 아님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안타깝게도, 가여운 조앤은 책의 중반이 넘어서야 이를 눈치챈다.


나도 공상이 많은 편이다.

조금 튀어나온 실밥을 당기면 끊기지도 않고 쭉 나오듯이,

목욕탕 하수구 머리카락이 잔뜩 엉켜 쭉 딸려 올라 오듯이.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은 시작되면 끝나기가 무섭다.

어디로 흘러갈지 ‘내’ 생각임에도 내가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그런 생각들이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조앤은 아니었다.

작은 공상은 조앤이 마주하기에 너무 버거웠다.


처음 조앤은 동창의 삶을 평가절하 하고, 주변 사람들의 삶을 한심하다고 계속 해서 말한다.

읽으면서 어찌나 불편했던지.

내가 생각하는 딱 재수없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이런 생각이 든다.


‘아, 가여운 조앤.’


그녀의 남편처럼 말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살다 보니 날것의 진실을 그대로 마주치기에 버거 울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했나.

조앤처럼 현실을 직시하기 보다, 자기가 보고 싶은 데로 진실이라고 믿고 살았나?


어쩌면,

조앤의 방법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버거운 진실을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에 묻어버리고는,

그 위에 차곡차곡 방공호를 쌓는 것.

자신이 믿고 싶은 일들로 그 진실을 묻어 버리면 되는 일이다.

그럼 진실 때문에 상처 받을 일도, 힘들어 할 일도 없다.

물론, 주변사람들은 좀 괴로울테지만.

조앤의 딸들이, 조앤의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봄에 나는 없었다" 는 추리 소설계의 홍콩할매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이지만, 추리소설이 아니다.


어디서 슬쩍 읽은 바로는,

처음 아가사 크리스티가 이 책을 발표 할 때 본명이 아닌, 필명으로 발표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선입견을 주고 싶지 않아서

라고 했다.


정말 그랬다.

안타깝게도 작가를 모르고 읽었더라면, 더 좋을 뻔 했을 책이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썼다고 하니,

자꾸만 사막에서 조앤이 시체를 발견 할 것만 같고,

길을 잃을 것 같고,

누군가 하나 죽어나가지 않을까 기대를 하면서 읽게 된다.


내용은 전혀 그것과 상관없는데도.


선입견이란 게 이렇게나 무섭구나.....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아가사 할매는 추리소설도 잘 쓰고 이런 심리 소설도 잘 쓰고……


질투가 조금 나네?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생각나는 영화가 있었다.


[블루 재스민] 우디 앨런의 영화인데,

정말 재밌게 보고,

나를 대입해서 보고,

감정을 이입해서 본 영화다.


영화 속 재스민과 조앤이 참 많이 닮아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든.

영화를 보고, 책을 읽든.

책도 영화도 보지 않았든.

어쨌든 두 작품 모두 봐 보길 추천한다.


불안한 한 인간의 심리를

작품을 읽고 보는 내내 백번 짜증내며, 불안해 하며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덧,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쓰지 않겠지만.

결말을 읽고 나면 모두 같은 생각을 할 것 같다.



"가여운 조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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