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오.
"밤 새 별일 없었수?"
송씨의 인사에 깜빡 잠이 들었던 김씨가 눈을 번쩍 떴다. 좁은 경비실 의자에 앉아 꾸벅잠을 잤더니 뼈마디가 삐걱거렸다. 이제 막 출근한 송씨가 김씨 뒤로 가 어깨를 주물러준다.
"아이구, 괜찮습니다."
자기보다 더 머리가 희끗한 송씨의 안마를 받자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김씨는 어깨에 얹힌 송씨의 손을 만져본다. 송씨의 손이 많이 차다. 김씨는 얼른 일어나 앉아 있던 자리를 내어줬다.
"순찰 한 번 돌고 올게요."
김씨는 책상 위에 벗어 놓은 경비 모자를 집어 들어 머리에 푹 눌러썼다.
"수고하시구려."
본래 다정한 성질이 못 되는 김씨는 혼자 어색해서 후다닥 경비실을 나섰다. 겨울이라 해가 늦게 뜬다. 더구나 새벽부터 펑펑 내리는 눈 덕에 어둠은 가실 줄을 몰랐다. 김씨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순찰 길을 더듬더듬 손전등 불에 의지해 조심히 걸었다.
김씨는 이층 짜리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예식장 야간 경비원이다. 야간 경비원은 주간 경비원보다 돈을 더 준다는 소리에 김씨는 이틀 전부터 이 곳에서 야간 경비 일을 시작했다. 오후6시에 출근 해 다음날 오전 8시까지 경비만 보면 되는 일이라 쉬울 줄 알았다. 예식이야 주말 낮에나 하고, 야간에는 할 일도 없겠거니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 평일 저녁 예식이 추세라나. 어젯밤만해도 늦게까지 춤추고 노는 사람들 덕에 애초에 생각했던 여유를 부릴 새도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야간 일에 김씨는 하품을 쩌억 했다. 다행스럽게도 작은 예식장을 순찰 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들지 않았다. 건물을 한 바퀴 돌고 차고로 나오려는데 불 밝혀진 차고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청소하는 이씨 아주머니가 쓰레기통을 정리하고 있었다. 꽃을 죄다 쓰레기 봉투에 우겨 넣고 있었다. 그런 이씨의 모습을 김씨가 멀뚱히 쳐다보고 있으니, 이씨 아주머니가 먼저 말을 건넸다.
"새로 오셨지요? 원래는 새벽에 차가 와서 전 날 쓴 꽃을 그 때 그 때 수거해가요. 근데 오늘은 눈이 많이 와서 수거하는 차가 오다가 사고가 났다 네요. 그래서 실장님이 일단 봉투에 담아 두랍디다. 내일이나 수거하러 온다고......"
말하면서도 이씨 아주머니는 부지런히 쓰레기 봉투에 꽃을 우겨 넣고 있었다.
"꽃이라는 게 참 그래요. 예식장에 꽂혀있을 때는 사람들이 그리 예쁘다고 사진을 찍어싸코, 냄새를 맡아싸코 대접해주는데, 이렇게 바닥에 있으니까 그냥 쓰레기에요. 쓰레기. 아무도 이런 거 이쁘다고 안 해요. "
여기저기 쌓여있는 꽃을 가만히 보던 김씨가 말을 꺼냈다.
"저......"
"예?"
"아직 안 버린 꽃 몇 송이 가져가도 될까요.....?"
"......그래요. 뭐 어차피 버리는 건데, 저 쪽 꽃이 제일 멀쩡한 거유."
이씨 아주머니는 꽃을 주어 담으며 턱으로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김씨는 이씨 아주머니가 가리킨 구석으로 가 신문지를 한 장 주워 바닥에 펼쳤다. 그리고 아직 달큼한 향기를 내는 장미 꽃을 신문지 위에 차곡차곡 올렸다. 적당히 꽃을 올리고 신문지로 둘둘 마는데, 이씨 아주머니가 다가와서는 꽃 뭉치를 휙 낚아챘다. 그리곤 신문지 안에 다른 종류의 꽃을 몇 송이 올려놨다. 이씨 아주머니는 하얀색 리본 끈으로 꽃을 묶으며 말 했다.
"오늘 결혼한 신부가 장미꽃으로만 장식해달라고 했다나 어쨌다나. 근데 원채 요즘 젊은 사람들 변덕이 죽을 끓잖아요. 그래서 플로리스트 아가씨가 장식 할 다른 꽃도 몇 송이 챙겨왔는가 봐요. 나는 장미꽃만 있는 거 보다는 이렇게 다른 꽃도 섞여있는 게 이쁘더라구요."
이씨 아주머니는 엉성한 손놀림으로 꽃을 끈으로 묶어 김씨에게 건네줬다.
"예식 있던 날에는 퇴근하기 전에 이리로 와요. 수거하기 전에 내가 몇 송이 챙겨놓을게."
"......예, 감사합니다."
김씨는 이씨 아주머니가 건네주는 꽃다발을 받아 들고, 경비실로 돌아왔다. 꽃다발을 들고 싱글벙글하는 김씨에게 송씨가 말했다.
"밖에 눈도 많이 오는데, 오늘은 한 시간 일찍 들어 가구랴. 나랑 바통 터치합시다."
뜻밖의 얘기에 김씨는 눈을 껌뻑 거리며, 시계를 봤다. 오전 7시. 퇴근할 때까지 한 시간이 남았다.
"뭐해요, 눈 더 오기 전에 얼른 가요."
"예, 감사합니다."
김씨는 얼른 입고 있던 점퍼와 모자를 벗어 걸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눈이 계속 오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에 꽃을 든 김씨가 퇴근을 한다. 사람들은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모자를 뒤집어 쓴 채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걸어갔다. 김씨는 혹여나 꽃이 눈을 맞을까, 겉 옷 앞 지퍼를 열고 꽃다발을 품속으로 넣었다.
녹슨 문의 끼익 소리에 김씨 장모의 목소리가 섞여 들렸다.
"왔는가. 고생 많았네."
"아닙니다. 좀 주무셨어요?"
김씨 장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씨는 발을 탁탁 바닥에 구르며 신발에 묻은 눈을 털어 냈다.
"눈이 많이 오는가? 옷 갈아입고 오게나, 아침밥 먹고 자야지."
무릎이 안 좋은 김씨 장모는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미끄러지며 부엌으로 갔다. 장모가 부엌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 김씨는 품 안에서 꽃다발을 꺼내 바닥에 놓고,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냈다. 그리고 제일 안쪽에 있는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닥에는 아내가 누워있다. 눈도 뜨지 못하는 아내 곁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내려놨다.
"당신 생각이 나서......"
김씨의 아내는 아무 말이 없다. 뼈만 남은 아내의 손을 잡고 김씨는 말했다.
"미안해.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