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계, 우리의 세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

by 이파리

소설의 거의 끝부분. 방학을 마치고 도쿄로 돌아가는 주인공. 방학 내내 자주 찾던 바에 들러 작별 인사를 하고, 야간 버스에 탑승해 아직도 따듯한 감자튀김을 먹으며 하는 독백.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한강 작가의 시가 떠올랐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밥 위에 피어오른 김이 지나가 버리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꿈은 "여름날 도로에 떨어진 소나기 빗방울처럼 흔적도 없이 조용히 사라져" 버린다. 그래도 우리는 밥을 먹고 장례를 치르고 학교로 돌아가 생활을 이어가는구나. 이 대목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두 권의 에세이를 통해 하루키를 접했다. 소설은 2년 전에 나온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딱 한 권 읽어 보았다. 집에는 하루키 소설이 초기작부터 잔뜩 쌓여 있는데도 그랬다. 책과의 인연은 다 정해진 때가 있는 듯하다. 무슨 법칙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읽고 나면 '아 지금이 이 책을 읽었어야 하는 때였구나' 혹은 '지금 아니었다면 이해할 수/읽어낼 수 없었겠다'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소설에서 바람은 여러 군데에 등장한다. 주인공의 친구가 거대한 고분을 바라보며 바람 소리를 듣는다. 그리곤 "매미나 개구리, 거미, 바람, 그 모든 게 하나가 되어 우주를 흘러가는" 듯한 감각을 느낀다. 화성의 광대한 우물에서 나온 청년에게 삶에 대한 힌트를 주는 목소리로도 나온다. 또, “언제나 머리 위에 나쁜 바람이 분다”는 여자에게 주인공이 건네는 "때가 되면 바람의 방향도 바뀔 거라 “는 위로의 말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소설은 하나의 굵직한 중심 사건이랄까 그런 것 없이 조각조각 얼기설기 연결된 느낌이다. 나는 왜 지금, 이 책을 집어 들었을까?


이 책의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이, 그리고 모든 주변 배경에 대한 묘사가 하루키 내면의 풍경으로 느껴졌다. ‘그가 느끼는 감정의 깊이와 다양성이 참 깊고도 넓겠구나. 그래서 쓰지 않을 수 없었겠구나’ 싶었다. 첫 책에서 작가는 마치 가방 바닥을 위로 쳐들고 안에 든 것들을 탈탈 털어내 본 것 같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으면서는 컴컴한 해저 밑바닥까지 하루키가(혹은 화자가) 이끄는 대로 천천히 따라 내려갔다가 올라온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이 소설도 비슷할까 궁금했는데 첫 책은 그저 여기저기를 보여줄 뿐이었다. 혹시나 그때부터 현재까지 하루키의 세계에 대한 힌트가 흩뿌려 진 책은 아닐까? 뒤늦게나마 앞으로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 나가는 재미가 클 것 같다. 때로 심심하다거나 시간이 떠버려 난처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수 있겠다. 매일의 틈새마다 하루키를 끼워 넣고 지내면 재밌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최근에야 그 정체를 수면 위로 떠올릴 수 있었던 문제가 하나 있었다. 어떤 어려운 상황이라거나 특정한 대상으로 인한 것이 아닌, 지하 53층 정도의 내면 깊숙한 데에 숨어있던 것이었다. 평온한 일상 중에, 문도 없고 창문도 없는, 모서리도 벽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 갇힌 것만 같은, 꼭 맞는 관짝에 들어가 옴짝달싹 못 하고 누워있는 듯한 심정이 될 때가 종종 있다는 거였다.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의식 아래의 세계에서는 늘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은 그런 마음이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상실감이나 공허감 혹은 절망감, 무력감으로 인한 슬픔 같은 것이겠다.

소설에 불치병을 앓고 있는 소녀가 병원에서 라디오에 편지를 보낸다. "때때로 만일 회복이 안 된다면,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너무 무서워서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입니다. 평생 이런 식으로 돌처럼 침대에 누운 채 (중략) 몇십 년 동안 병원에서 나이를 먹고 쓸쓸하게 죽어간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없이 슬퍼집니다." 나는 불치병을 앓고 있지도 않은데 왜 그녀의 마음과 비슷한 심정일까. 사실 우리 모두 살면서 종종 그런 심정이 되는 거겠지. 그럼에도 먹던 밥을 계속 먹고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하는 거고. 소녀의 견딜 수 없는 두려움과 슬픔을 실은 바람의 노래를 이제는 들을 수 있어서 지금인가 보다.


소녀의 사연을 읽은 라디오 DJ가 남긴 말도 기억에 남는다. 항구에서 (병원이 있는) 산 쪽을 보니 많은 불빛이 보였다고.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라고. DJ의 눈물을 담은 바람 소리도 이제는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어서 지금이었나 보다. 모두 각자의 삶이라는 저마다의 세계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에 왜 그렇게 울컥하고 감동과 온기를 느끼게 되는지….

주황색 지붕이 가득한 오래된 유럽의 작은 마을.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화창한 여름날. 그 가운데 서 있는 커다란 종탑에서 한낮에 울리는 종소리처럼 내 마음에 울림을 준 문장들이 많아서 노트에 옮겼다. 하나둘 옮기다 보니 어느새 책을 통째로 필사하게 생겼다. 예쁜 노트에다 제대로 필사를 해야지. 하루키 첫 소설의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아껴가며 조금씩 필사해야겠다. 그러면서 나의 세계의 먼지도 털고 우리의 세계를 마주해 봐야겠다. 그렇게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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