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찜

시집 못 읽는 병을 고치고 있습니다.

by 이파리


시찜, 단어찜, 문장찜, 음악찜, 영화장면찜 중에 시찜을 신청했다. 모름지기 활자애호가라면 시집 못 읽는 병은 좀 고쳐야 하지 않나 하고 있던 차였다. 타이밍이 예술이었다. 100일 글쓰기 강사님이 완주자들을 위해 운영하는 소모임이다. 완성된 한 편의 글을 써서 같이 읽고 나누는 글쓰기 모임도 있고, 가볍게 온라인에서만 활동하는 다양한 찜 모임도 있다. 힘들게 완주했으니 글쓰기를 계속 이어가라는 강사님의 독려가 담긴 일종의 돌봄 서비스, 어린이집 방과 후 교실 같은 거다.

가볍게 하루 한편, 일주일에 최소 두 편의 시를 감상평과 함께 톡방에 올리면 된다. 감상평은 한 문장도 괜찮고, 긴 글이어도 상관없어서 부담이 없다. 일주일에 두 편은 읽겠다 싶어 신청했는데, 시를 골라야 하니 여러 편 읽게 된다. 또 같이 하는 사람들이 올리는 낯선 취향의 시들까지 해서 제법 다양한 작품을 읽고 있다.

시집에 실린 모든 시가 술술 이해되고 척척 마음에 와닿고 그렇지는 않다. 어떤 시들은 읽다 보면 물음표와 말줄임표만 떠올라 미련 없이 멈추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그 시집에서 좋은 시를 하나라도 만났다면 지나쳤던 시들을 다시 읽으러 돌아가기도 한다.

시를 논픽션 읽듯 봐서 읽지 못했던 거였다. 논픽션은 한 숟갈 한 숟갈 떠먹여 줘서 편하다. 상세히 설명해 주고 근거를 들어가며 누구라도 납득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전개하니까. 시를 읽으면서도 무의식 중에 그런 걸 기대했던 것 같다. 요새 조금 읽어보니, 시는 시인이 어떤 찰나를 일시정지 시켜놓고 담아낸 이미지랄까, 영상에 더 가까운 것 같다. 활자로 되어 있긴 하지만 영화의 한 장면이나 한 폭의 그림처럼.


'시인의 머릿속과 오감과 마음속 풍경에 글을 입혀놓은 거구나.'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듯 느릿느릿 시인의 시선을 상상하면서 읽어 보려고 한다. 그게 바로 되는 시도 있고, 조금 더 공을 들여야 하는 시도 있는 것 같다. 아직 나의 시 읽는 모드가 충분히 활성화가 안 돼서인지는 몰라도 영 모르겠는 시도 많다.

시인이 시를 쓴 그 순간 무엇을 감각하고 어떤 연상을 한 걸까 궁금해하며 마음에 공간을 만들면 허공에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시인이 있었던 장소나 보고 있던 장면과는 다르겠지만.

원체 뛰듯이 읽고 달리듯이 사는데 익숙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시 필사가 무척 도움이 된다. 느린 손글씨로 종이에 시를 베껴 쓰는 동안 (눈보다는 느린, 타자 치는 손도 마찬가지로) 천천히 마음에 여백을 만들 시간을 벌어준다. 아무튼 지금까지 알아낸 바로는 '마음에 빈자리‘를 마련하는 것과 '천천히'가 키포인트인 것 같다.

누가 가르쳐줬을 텐데, 시는 어떻게 읽는 거라고. 아마도 학교에서 국어 선생님이 알려줬을 거다. 내가 귓등으로도 안 들은 거겠지, ‘시는 무슨, 지겨워 죽겠다아’ 하면서. 이제와 뒤돌아보니 학교는 사는데 필요한 걸 많이 가르쳐 준 곳이었다. 꼭 필요한데 안 가르친 것도 많긴 하지만. 필수 과목으로 시랑 탐조가 있었다면 이후의 삶이, 우리 사회가 지금과는 조금 달랐을까 생각해 본다.

시찜을 하다 보면 시 읽는 법을 더 다양하게 깨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먹어도 아는 게 없어 배울 거 천지라는 걸 알아가는 나날이다. 이런 인생도 괜찮은 것 같다. 혹여나 짧게 끝난다면 너무나 아쉬울, 흥미진진한 이승생활이다. 날은 좀 (많이) 덥고, 가슴 답답한 뉴스도 쏟아지긴 하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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