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배움

<무지의 즐거움>, 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 도서출판 유유

by 이파리

자유롭게 하는 제목이다. 우치다 다쓰루 선생의 책 제목은 항상 유쾌하다. 그의 사유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도서관, 책, 출판에 관한 책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로 처음 선생을 만났다. 글에서 느껴지는 선생의 목소리나 말투는 한없이 다정하고 공손하며 설명 또한 상세한데 군더더기가 없다. 그러나 그의 사상이랄지 관점은 우리가 가진 줄도 몰랐던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얼린 쇠망치 같다.

작년에 나온 이 책은 출판사와 번역가가 질문을 던지고 선생이 답하는 형식이다. 배우는 태도, 배움의 밑천, 배움의 즐거움, 왜곡된 배움, 배움의 소임, 배움의 결실, 평생 배움의 길 이렇게 7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7주 완성 뇌 찬물 샤워 & 갱생 프로그램’이라고 부르면 좋겠다 싶은 책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 생각할 때면 딱 이거다 하고 말할 수는 없지만, 뭉뚝한 아이디어 혹은 대강의 방향 정도만 알고 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틀도 내용도 갖추지 못했던 것들이 선생의 쉬우면서도 딱 들어맞는 설명을 들으며 꼴을 갖추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번역가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우치다 선생의 말은 내 안에서 자연 발생적으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것으로, 그 말에 닿음으로써 내 안의 뭔가가 구제를 받고, 얼어붙어 있던 것이 소생하고, 경직되어 있던 것이 흐물흐물해지고, 멈춰 있던 것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런 말이다." 뒤이어 나오는 말에도 공감됐다. "나는 선생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이런 말을 '몸속에 쓱 들어오는 말'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해할 수 있는 말'과 '몸속에 들어오는 말'은 다르다. 몸속에 들어오는 말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어도 몸속 어딘가에 머문다. (...) 몸속에 들어오는 말은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해도 읽은 사람의 생명 활동에 관여하게 된다.”

선생은 모르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한다. “공자는 자신이 설파한 것은 자신의 독창적인 사상이 아니라 모두 선현의 가르침을 조술한 것에 불과하다고 거듭 이야기했습니다. 참으로 역설적인 말인데요, 이는 공자가 '조술자'라는 위치에 몸과 마음을 두는 것이 창조적으로 사고하는 데 굉장히 유효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아는 것만 말할 수 있다면 아무도 무엇도 말할 수 없다고 하면서 선생은 "나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스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이건 어떤 의미일까요?" 하는 식으로 접근하라고 한다.


너무나도 다정한 가르침 아닌가. ‘나는 이 정도를 이해했을 뿐입니다’하는 정직한 태도로 다가가면 된다는 말에서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손길이 느껴졌다. 글쓰기나 직업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일에서도 모른다는 불안과 알아야 한다는 부담이 늘 무의식 중에 자리하고 있다. 그간의 괴로움을 알아주고 다른 길도 제시해 준 것 같아 뭉클했다.

"내 가설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사후 감정을 기다린다"라고 말하는 이의 언명은 (설령 틀렸다고 해도) 과학적입니다.

최근 우연히 봤던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인터뷰 영상이 떠올랐다. 아인슈타인이 이전에 자기가 한 말을 바꾸거나 상충하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면서, 이것은 그가 진정한 과학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은 아인슈타인이 일관되지 않았고 허점이 많았다고, 나중에 번복하기도 했었다니 ‘역시 완벽한 사람은 없군’ 해버리기 쉽다. 자신의 발견에 집착하지 않고 다시 생각해 보고 이전에 한 말이 틀렸을 때 이를 받아들이고 수정하는 유연한 사고를 하는 아인슈타인. 그의 진짜 위대함이 바로 이런 수정 가능성에 대한 열린 자세라고 말하는 로벨리. 입이 쩍 벌어지게 멋진 스승들이다.

우치다 선생은 책에서 프로이트를 언급하며 비슷한 말을 했다. 다음은 프로이트가 어떤 개념에 대한 가설을 제시한 후 쓴 내용이라고 한다. “여기에 전개한 과정을 과연 확신하고 있는지 아닌지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믿고 있는지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나 자신도 믿고 있지 않고 타인에게도 그것을 믿으라고 하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싶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어느 정도 그것을 믿고 있는지 모르겠다. (.....) 우리는 어느 정도 사고 과정에 몸을 맡기고 그것이 이끄는 곳까지 따라갈 수 있지만 그것은 단지 학문적인 호기심이기 때문이다. “


전공과 관련해 프로이트는 수없이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심리학의 아버지이자 정신분석 이외의 다른 이론가들조차 프로이트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할 만큼 존재감이 어마어마하다. 그런 그가 이런 겸손한 말을 했다니. 그의 위대함은 이런 진솔성에서 나왔다는 걸 뒤늦게 배웠다. ‘나는 알지 못한다’라는 마음이 어쩌면 앎을 완성시킨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쭈뼛 서고 눈이 번쩍 떠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직 모를 뿐(don’t know mind)을 설하신 숭산 큰 스님도 떠올랐다. 진정한 의미의 과학과 종교를 초월한 영성은 같은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내용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수신자가 저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선생이 대학원에서 레비나스라는 철학자의 책을 처음 읽고 난 후의 감상이다. 상당히 인상 깊게 다가오는 말이다. 나는 심한 과알못이다. 물리는 아랍어로 안 써놔도 이해 불가다. 그런 내가 세계적인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읽어보려 한 적이 있었다. 대중서라길래, 나는 대중이니까. 하지만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수신자가 나라는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여기에 진짜 중요하고 내가 꼭 이해해야 하는 게 있는 것 같긴 했다. 이해는커녕 읽어나가지도 못해서 ‘흥, 대중서라더니’ 하고 중고 서점에 팔아버렸던 것 같다. 선생의 저 문장을 읽고 로벨리의 책에 다시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 년이 걸리는 도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익숙한 주제나 잘 아는 내용의 책 혹은 이미 읽은 책들이 가득한 책장보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나 낯선 분야의 책들로 채워진 서가가 더 좋다. 읽고 싶은 책, 보고 싶은 영화, 가고 싶은 공연이나 여행지 목록은 앞으로 더 경험하며 달라질 나를 상상하게 해 기분 좋은 흥분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공부 목록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새까만 표지에 얇은 은색 실선이 드문드문 흩뿌려져 있다. 꼭 내 머릿속 같다(내 머릿속은 앞면보다는 뒷면에 더 가깝겠다). 무지로 가득한 어둠 속에 듬성듬성 작고 짧은 빛이 깜빡이듯.


이 책을 읽고도 무지를 두려워하고 계속 무지와 싸우려는 이는 많지 않을 듯하다. 선생은 제자를 자유롭게 해 줌으로써 자연스레 배움의 길로 이끄는 참스승이다. 좋은 스승을 만나는 즐거움을 더 많은 사람이 누리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인의 투잡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