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읽은 편지

지친 마음일 때

by 이파리


내일 100일 글쓰기 완주자 모임이 있다. 가서 낭독하고 같이 나눌 감상문 파일을 정리해 두려고 글쓰기 폴더가 없나 찾아보았다. '전에 만들어 둔 게 있을 텐데.' 최근엔 앱에서 작업하고 저장하는 편이라 파일을 만들 일이 거의 없었다. 오랜만에 폴더를 열었더니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제목의 PDF 파일이 있었다.


"마음산책 2강, 시와 마음, 진은영".


아마 호기심에 충동적으로 신청한 강의였을 거다. 2023년이라면 몸과 마음이 이미 지쳤을 때라 여유 있게 들을 상태가 아니었다. 화상 강의였겠지, 대면 행사에 직접 갈 만큼 열정이 넘치진 않았을 테니. 분주하게 돌아가는 머리와 산란한 마음 때문에 집중하지 못하고 내내 딴짓을 했거나 아니면 아예 줌 회의 링크를 클릭하지 않았을지도. 차라리 잠이 더 필요했던 시기였다. 전생 같기도 하고 엊그제 같기도 한 게 아득한 기분과 익숙한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2강. 시는 우리가 함께 있는 방식


1.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2. 시는 홀로 있는 누군가와 만나는 방식

3. 차이를 느끼며 함께 있는 방식

4. 시와 함께 있던 자리 -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그곳까지

5. 시는 우리가 상실한 존재와 함께하는 방식


강의는 기억에 없지만 자료를 읽어보니 다섯 개 꼭지마다 시 한 두 편과 짤막한 산문들이 같이 소개되어 있었다. 시 읽는 마음을 알려주고 싶어서 정성스레 준비한 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편지가 2년이나 지척에서 잠자고 있었다니. '시는 홀로 있고 함께도 있는 방법이구나. 진정으로 함께 하려면 먼저 홀로 있을 수 있어야겠지.'



나는 한 번도 양을 쳐 본 적 없지만,

쳐 본 것이나 다름없다.

내 영혼은 목동과도 같아서,

바람과 태양을 알고

계절들과 손잡고 다닌다.

따라가고, 또 바라보러.

인적 없는 자연의 모든 평온함이

내 곁에 다가와 앉는다.

하지만 나는 슬퍼진다


(중략)


그러나 내 슬픔은 고요하다

그건 자연스럽고 지당하니까

그건 존재를 자각할 때

영혼에 있어야 하는 거니까

그리고 두 손은 무심코 꽃을 딴다.


-페르난두 페소아, 양 떼를 지키는 사람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에 실린 시다. 과거의 나는 지친 와중에 왜 시를 찾았을까. 어쩌면 지쳐가고 있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시인이 보여주는 정경과 시를 통해 존재하는 시인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알아보아야 한다는, 내면의 소리를 피하지 말고 마주하라는, 의식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마음 아래로부터 '온전히 홀로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들었던 게 아닐까 싶다. 충동과 호기심에 반응해 준 과거의 내가 기특하고 고맙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편지도 읽어봐야겠다. 시집을 사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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