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좋은 마음만

김복희, <보조 영혼>, 문학과 지성사

by 이파리


위문편지


얘들아,

전학 오자마자 입원한 친구가 있다. 퇴원할 때까지 위

문편지를 보내자.


선생님 말대로

출석 번호 순서대로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를 써서 선생님께 드렸습니다.


오늘은 딸기우유가 나왔고 네가 어서 나았으면 좋겠고

오늘은 산수를 했으니 너에게도 알려주겠다며 사과를

다섯 개 받은 곰과 사과를 두 개 받은 사슴이 서로 사과를

공평하게 나눠 먹는 이야기를 적고

사슴하고 곰이 싸우면 누가 이기겠냐 그러다가 어느 날


선생님이 답장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반장이 대표로 읽었습니다.


너희들을 잊지 않을게. 고마워. 안녕.

선생님께서 조금 울었던가 그랬습니다.


여러분은

사슴과 곰 중 누가 이길 것 같나요.


종종 처음 보는 또래를 만나면 물어봅니다.

사슴과 곰 중 누가 이길 것 같은지.


터널인 줄 알고 들어섰는데

동굴인 곳

혹시 몰라 하면서 나아가야 하는 곳

에 들어가게 되면

아기 곰과 아기 사슴에게 먼저 사과를 줄 수 있겠는지.


이듬해 우리는 흩어졌습니다.



*



쉬는 시간 교실에서 편지 쓰는 아이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지는 시다. 받아쓰기 숙제나 수학 문제 풀이, 피아노 연습이나 친구 생일카드를 쓸 때랑 다를 바 없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지 않았을까. 아직 만나 본 적 없는 전학생 친구는 학교 안 와도 돼서 좋겠다고 생각했다가 그래도 열나고 배탈 나서 아팠던 날 힘들었던 걸 기억하고 친구는 많이 안 아프고 빨리 낫길 바랐을지도. 편지를 쓰려고 보니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봐야 했겠지. 오늘 뭘 배웠더라, 수업시간에 졸았나, 기억이 안 나는데... 얘한테 어떤 얘기를 해줘야 좋아할까 생각했을 맑고 또렷한 마음. 다른 가능성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겠지. 혹시나 하는 무서운 생각은 안 들었겠지. 그랬으면 싶지만 어렴풋이 슬픔을 감지한 마음도 있었을 수 있겠다. 어떤 아이는 최대한 예쁜 글씨로 꾹꾹 눌러 반듯반듯 쓰고 어떤 아이는 얼른 써버리고 놀러 나가려고 휘갈겨 쓰곤 선생님한테 던지듯 건네었을지도. 그래도 쓰는 동안 종이에 눌러 담았겠지 사랑을. 그러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밖에는 할 줄 모르니까 아직은. 가볍게 좋은 마음만 줄 줄 알아서. 편지 쓰는 아이들에도, 위문편지를 쓰게 한 선생님에도, 그 편지를 받아 들었을 아이의 보호자에게도 마음이 이입되어 어디로 가도 슬퍼지는 시다. 정작 아픈 아이는 편지를 읽었을까. 읽지 못했다면 누군가 읽어줬겠지. 읽어주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니 매일 도착하는 따뜻한 마음들을. 아이는 터널인 줄 알고 더듬더듬 바닥과 벽의 찬 기운을 느끼며 매일 그 밝은 빛을 보고 들었을까. 아기 곰과 아기 사슴에게 먼저 사과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다짐하게 하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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