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올 장례식장은 아니었다.

김복희, <보조 영혼>, 문학과 지성사

by 이파리


사람이 많은 장례식장



사람이 아주 많을 시간을 골라서

장례식장에 갔다

장례식장 바깥에서 멀찌감치 서성거리면서

사람이 가득 차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가볍게 인사만 하고 올 계획으로

앉을 자리도 없어야 밥 먹고 가란 말 안 들을 텐데 괜히

장례식장 바깥을 두어 바퀴 돌았다

볼 거라곤 사람들의 흰 얼굴

담뱃불이 만들어내는 연기


쉼 없이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이

육개장을 치우고 소주를 채우고 맥주를 날랐다

내가 갈 장례식은 아니었다

발 디딜 틈이 없는 장례식장이네

가볍게 향만 맡고 가면 되겠네

같이 간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밤샘 중인

상주의 파랗게 내려앉은 얼굴을 잠시 핥았다

잠들라고

절은 하지 않았다 기도도

문상객 옆에 엎드려 밥이 사라지는 걸 구경했다



*



어쩌다 보니 "위문편지" 다음으로 읽은 시라 화자가 꼭 "위문편지"에서 반 아이들이 돌아가며 편지를 썼던 그 친구 같다. 어린애가 죽었으니 부모의 지인들이 잿빛의 황망한 얼굴을 하고 많이도 찾아왔다. 발 디딜 틈 없는 장례식장. 향기 같은 아이는 방문객인 양 다녀가려고 기웃기웃하다 안으로 들어선다. 여기까지 같이 와준 영혼들도, 매일 편지를 보내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우리 반 친구들만큼이나 착해서 외롭지 않게 지내는데... 그걸 알리 없는 엄마랑 아빠는 핏기 없이 파랗게 내려앉은 얼굴이다. '내 걱정 말고 잠 좀 자. 힘들어 보이는데...' 상주의 얼굴을 잠시 핥고 절도 기도도 하지 않는다. 아이라 어른들 옆에 가만히 엎드려 말없이 구경하는 일은 익숙하다. 병원 침대에서도 조용히 누워 어른들의 허연 얼굴을 많이 올려다봤었지. 연기 같은 아이는 발그레한 홍조 띤 얼굴로 북적이는 장례식장 바닥을 내려다본다. 흐릿한 자기 발을 어디쯤에 디뎌야 할지 알 수 없다. 내가 올 장례식장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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