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andscape of sanctuary

이제야, <진심의 바깥>, 에피케

by 이파리


언덕 서점



겨울 저녁 언덕 위 작은 서점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소설 한 문장을 이해하려고 며칠을 애쓴 사람이

왔습니다


언어가 정확한 진심이 될까요

우리는 물었습니다


아무 답도 없이 소설 한 문장에 계속 밑줄을

그었습니다


다음 사람은 시들어 가는 식물을 가방에 넣어

왔습니다


짧은 무관심에 시간이 베이겠죠

우리에게 고백합니다


식물에게 태교 통화를 읽어 주고는 마른 잎을

떼어냈습니다


책을 한 번도 골라본 적이 없는 사람이 서점을

헤매고 있습니다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책이 있어요

우리는 다짐했습니다


사전을 꺼내 사랑을 찾고는 사랑이 지워진 책을

골랐습니다


빈 얼굴을 잔뜩 그린 스케치북을 든 사람이

왔습니다


이해되는 만큼의 눈빛은 없지요

우리를 안았습니다


책을 뒤지면서 빈 얼굴에 문장을 하나하나

채웠습니다


가장 가파르던 마음들이 고단한 언덕을 내려갑니다


다시 믿어도 되는 이야기들이 생겼습니다



*


어느 겨울밤, 고단했던 마음들이 다시 믿어도 되는 이야기를 소중히 안아 들고 가파른 언덕을 총총히 내려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어떤 서점이길래 이렇게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진심을 쏟을까. 서점 풍경이 나에게는 마치 시나 소설 같은 문학 같기도 하고, 음악 같기도 하다. 그림이나 조각 같은 예술 작품을 감상 중인 전시장에서의 우리 모습 같기도 하고… 밤에 꾸는 꿈일 수도 있겠다. 우리 마음 안에도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으로 이루어진, 크고 넓은 안식처가 있으니까. 살아가는 데에는 각자만의 (현실과 내면의) 언덕 서점이 필요하다고 학교에서 가르쳐 주면 좋았을 텐데.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많은 걸 시를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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