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시와 물질>, 문학동네
손과 손으로
너는 마악 손으로 떠낸 실테를
내 앞에 내민다
잘 받아내려고 나는 한껏 몸을 기울인다
아이를 받아내는 산파처럼
더 나빠지든 더 좋아지든
더 모아지든 더 흩어지든
어찌되었든 이 실뜨기를 이어가야 해
우리는 한 줄기 실이나 몇 가닥 머리카락으로 연결되어 있어
나는 네 머리를 땋아주고 너는 앞에 앉은 친구 머리를 땋아주고 그 친구는 앞에 앉은 친구 머리를 땋아주고 그 친구는 앞에 앉은 친구 머리를 땋아주고 그렇게 원을 그리며 앉아 서로의 머리를 땋아주었지 네 머리는 너무 짧아서 땋기가 어려워 네 머리는 너무 길어서 땋아도 땋아도 끝이 없네 너는 머리카락에 힘이 없는 것 같아 너는 머리카락에 윤기가 돌아 너의 머리카락에선 향긋한 냄새가 나는구나 너는 머리카락이 철삿줄 같구나 서로를 땋아주고 낳아주고 실과 실이, 실과 손이, 손과 손이, 손과 머리카락이 이어지면서 태어나는 둥근 둘레들
실뜨기는 자주 어그러지지만
우리는 다시 손가락에 실을 걸기 시작한다
작은 무대 같기도 하고 바구니 같기도 한 실의 형상은
가만히 입을 벌린다 누군가의 손을 기다리며
무너져가는 실테를 아기처럼 받아내는
산파의 손을
*
시집 맨 끝에 실린 시. 실뜨기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마치 아주 귀한 걸 건네받듯 매번 정성스러운 자세가 되었었다. 가느다란 실이라 자동으로 귀하게 대했던 것 같다. 여리고 약한 걸 지키려는 듯.
자연을, 사회를, 인연을, 가능성을, 희망을, 마음을, 그리고 자기 자신과 지금 이 순간을 실뜨기하듯 조심조심 소중하게.
무엇보다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 무너져도 다시 손가락에 실을 팽팽하게 걸고.
<시와 물질>에는 신문 사회면에서 볼 법한 소재들이 가득하다. 시인은 살아 숨 쉬는 물질로서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하자고, 모든 물질을 등장시켜 알록달록한 말들을 건넨다.
받아 든 것들이 무겁기도 하고 때론 가슴이 아리면서도, 마냥 버겁지만은 않다. 인류애를 넘어 모든 생명과 물질에 대한 시인의 깊은 사랑 때문인 듯하다.
인간의 자리에서 동물과 식물의 자리로, 곤충과 진딧물, 삼천 년 전 물방울, 플라스틱과 바다, 도시와 석유, 사고와 인재(人災), 존엄사, 베트남과 지리산, 버섯과 눈 그리고 다시 몸 가진 인간에게로.
산타의 선물 보따리 같은 시집. 아주 아주 큰 보따리라 자꾸자꾸 손을 넣어 휘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