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네 집의 베란다에는 언제나 초록빛 화분이 가득하다. 가지각색의 식물들이 저마다 힘차게 자라고 있는 모습이 싱그럽게 느껴진다. 어떻게 하면 이처럼 순조롭게 키울 수 있냐고 물어보니 엄마는 무심히 대답하신다.
“제때 물 주고 적당히 햇빛 쐬어주면 돼.”
간단한 대답과는 다르게 식물들을 이리저리 살피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엄마가 보인다. 먼지가 내려앉은 벵갈고무나무의 잎을 닦아주고 물 샤워를 해주신다. 슬쩍 곁에 가서 보니 호흡하는 구멍을 막고 있던 먼지가 씻겨 내려간 고무나무 잎은 더 건강하고 반짝인다. 몬스테라는 추운 겨울에는 실내로 들이는 것이 좋다고 하시며, 조심스레 화분을 들어 품에 안고 거실의 햇빛 잘 드는 곳으로 옮기신다. 간단한 대답 뒤에는 식물의 말에 귀 기울이고 필요한 행동을 기꺼이 하는 수고로운 정성과 관심이 녹아 있었다. 엄마는 얼마나 오랜 시간 이 아이들을 살피고 애정을 주었을까. 식물 하나를 잘 키워 꽃을 피워 내는 것도 갖은 수고와 정성이 들어가는데 하물며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얼마나 많은 애를 써야 할까. 식물마다 ‘적당한’ 햇빛의 양과 ‘제때’의 물이 다르듯이 사람마다 원하는 관심과 필요가 다르다. 서로의 관심과 필요를 인지하지 않고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할 때 사랑이라는 꽃은 피다 만 꽃봉오리일 뿐이다.
우리 부부는 신혼 때 언제 밥을 먹을지, 정리·정돈은 어떻게 할지 같은 생활 방식의 차이, 시청하는 TV 채널이 다른 취향 차이와 명절과 제사 등 집안의 대소사를 겪으며 부딪혔다. 신혼이니까 당연히 싸우는 것이라 여겼고 결혼 선배들의 말처럼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이니 이것 또한 지나가겠거니 생각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처음 해보는 부모 노릇에 우리는 기운이 빠졌다. 신랑은 퇴근 후 흡사 야근과 같은 육아가 시작되니 쉬지 못해서 힘들고, 나는 온종일 (당시) 4살, 2살 두 아이와 씨름하니 몸도 마음도 지쳤다. 식사 준비할 여유도 없어 대충 끼니를 해결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온 신랑이 빈 밥솥과 텅 빈 냉장고를 보더니 한숨을 푹푹 쉬었다.
“밥은 좀 해놔. 쌀 씻어서 버튼만 누르면 되지 않아?” “애들 보다 보면 못할 수도 있잖아.”
신랑의 짜증 섞인 말에 나 또한 퉁명스럽게 응수해 싸움으로 이어졌다. 결국 그는 터덜터덜한 발걸음으로 편의점 음식을 사러 나갔고, 나는 현관문을 쿵 닫는 소리를 들으며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을 하지 않아 갈등한다는 생각을 불현듯 했다. 나는 “아이들과 수고했다”라는 그 말이 듣고 싶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기쁨인 신랑은 따듯한 저녁 식사가 간절했을 것이다. 그때부터 아이들 식사뿐만 아니라 우리 부부의 저녁 식사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맛깔스러운 국을 좋아하는 신랑을 위해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소고기뭇국 등 각종 국을 섭렵했다. 동시에 “맛있다, 고맙다, 아이들 보느라 고생했어, 네 덕분이야” 등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을 신랑에게 주문했다.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를 이해하고 상대방의 필요를 알아간 우리 부부의 10년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사소한 오해 때문에, 삶의 부침들로 인해 사랑에 대한 노력이 주춤한 날도 있었다. 앞으로 함께 할 세월은 ‘살짝’ 핀 사랑 꽃이 ‘활짝’ 피도록 사랑에 대한 노력을 이어나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무럭무럭 자라 꽃을 피우는 식물처럼, 서로에 대한 갖은 수고와 정성이 사랑이라는 꽃으로 만개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