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삶은 무지갯빛이다.

by Jihye

저자의 이름이 낯설다. ‘누구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작가 소개를 찾아보았다. 공장 노동자 출신으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등단했다고? 공포소설을 쓰는 초단편 소설(단편보다 더 짧은 소설) 전문가, 등단 5년 만에 1000편이 넘는 소설을 창작한 작가. 독특한 이력을 지닌 저자의 삶과 글이 사뭇 궁금해졌다.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작가의 삶은 무슨 색일까?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책을 열었다.

소설가 이전의 삶을 기록한 1장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인생 첫 물음에 대한 작가의 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고 위트 있게, 소설가답게 흡입력 있게 풀어낸다. 부산 영도 산복도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니 섬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투박한 단발머리에 볼록한 볼이 유난히 빨갰던 먹성 좋은 아이. 섬에서 나의 별명은 양념게장 먹보 '게보’였다고 한다. 할머니께서 해 주신 양념게장을 손에 들고 쪽쪽 빨아먹고 양념장에 밥 비벼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흐뭇해하셨다. 넓고 푸른 바다가 앞에 펼쳐져 있고 우뚝 솟은 산이 뒤에 있는, 농사를 지으면서 어업도 함께 하는 섬마을, 낭도. 바다와 산에서 가장 부지런하셨던 할머니와 할아버지, 힘겨운 섬 생활 중에도 우리 남매를 살뜰히 챙기는 엄마의 모습은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표현은 투박해도 부드럽고 따스한 속정, 바다같이 넓고 깊은 참 사랑, 끈기와 인내를 나는 섬에서 배웠다. 나를 키운 팔 할은 '낭도'라 할 수 있겠다.

작가가 된 이후의 삶을 기록한 2장은 한 사람의 인생이 글쓰기를 통해 어떻게 확장되고 깊어지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하게 된다.

2016년 5월에 첫 소설을 쓰고, 1년 반 만에 300편을 썼다. 인터넷 게시판에 소설을 올리고,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내가 사람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채워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그 일련의 일들은 무채색이었던 나를 발끝에서부터 색칠해 나가는 과정 같았다. (157p)

내게 글쓰기는 친구였고, 행복이었고, 구원이었다.
(158p)

에세이를 쓰며 나 자신과 소설가라는 직업, 주변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점도 큰 보상이었다. 머리 한구석에 자리한 생각과 감정을 차근차근 풀어내다 보니, 그것들이 더욱 명확해지고 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에필로그 중에서)

글쓰기를 친구, 행복, 그리고 구원이라고까지 하는 작가는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공장에서 10년간 일할 때 그냥 기계 부품 같았으나, 이후에 소설가라는 정체성을 통해 자신이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존재, 살아갈 이유가 있는 고유한 주체라고 의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무채색이었던 그에게 색을 입혀 준 것이 글쓰기가 아닐까? 글을 쓰면서 무채색이었던 그의 삶이 이제 형형색색으로 알록달록하게 바뀌지 않았을까? 마카롱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작가로서의 목표에 성큼 다가선 듯하다. 다디달고 화려해서 많이 먹지는 못하지만 잊을 만하면 생각나는 마카롱 같은 글을 쓰는 것. 몇 번이나 봤는데도 오랜만에 보면 또 재미있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글을 쓰고 싶다는 작가의 소망을 응원하게 된다.

육아에 집중된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들, 실패 후 흘러가는 날들이 지루하고 따분해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다. 검은색과 회색뿐인 인생 스케치북의 페이지. 무채색이었던 나에게 색을 입혀 준 것이 글쓰기이다. 일기 쓰기를 시작으로 글쓰기 수업과 캘리그래피 수업을 수강했고, 용기를 내어 블로그를 열고 브런치를 채워나갔다. 손으로 쓰고 키보드를 두드려 비어 있는 페이지를 채우면서 내 인생도 점점 차오르고 있다. 페이지 수만 많고 비어 있던 스케치북이 색색의 그림으로 채워지는 느낌이랄까.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삶은 무지갯빛임을 알아가고 있다. 글쓰기라는 물감으로 발끝에서부터 색칠해 나가니 이제는 삶이 무지개색으로 보인다. 세심한 시선으로 나와 아이들, 세상을 살펴 색색의 페이지를 써 내려가야지. 무지개 빛깔을 뿜어낼 나의 글쓰기 여정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