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도 사람이 사는 곳, 내 일 하나 없을까.
제주에서 한 달간 머물면서 어느 날은 천천히 흘렀고, 또 가벼운 마음으로 바람을 맞고 걸었을 뿐인데 하늘을 보니 초승달이 비추던 그런 날도 변변치 않게 있었다.
첫 일주일 동안은 길도 자주 잃어버렸고, 가고 싶은 목적지를 도달하지도 못한 채 돌아오기도 했다.
여행에 큰 욕심이 없었던 나는 사람들이 많은 관광지 보단 세화와 종달리에 자주 놀러 가서 바다도 보고 시골 마을을 산책하곤 했다.
어떻게 이름도 이렇게 정감 갈까
특히나 김녕에서 종달리까지 먼 거리를 달리는 버스에서 창문을 통해 세상 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좋았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 할머니와 나 단 둘이 그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넘어 종달리에 내린 적도 있었다.
내리자마자 백반 집에 들어가 가자미와 새알이 들어간 미역국으로 몸을 따듯하게 데우고, 바다라는 고양이가 있었던 카페에서 커피와 책을 읽곤 비를 감상했다.
토요일마다 열렸던 벨롱장과, 오일장에서 먹었던 주전부리들과 정겨운 할머니들의 제주도 방언까지 사치랄 것도 없지만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사소한 곳에서 찾아오는 편안함과 기쁨이 남루하기 짝이 없던 스물두 살의 삶 안에 들어와 다시 알려주었다.
천천히 너의 길을 만들어가라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걸을 때마다 나를 흔들다고도 잠잠하게 쓰다듬었던 이 여행은 내가 나를 만나는 첫 여행이 되었다.
앞서 말했듯, 굳이 관광지를 찾아가지 않았다. 내가 발을 옮겼던 곳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를 반겨줬을 뿐이지만 자유를 만끽하게끔 채워주었다.
나는 한 달간의 여행을 통해 처음으로 내가 주체가 되어 살아보았다. 가족을 생각하지 않아도, 옆에 친구가 없어도 그저 나의 모습으로 있어보았다. 매일 하던 화장도 멈추었고, 휴대폰도 보지 않았다.
오로지 나를 위한, 나를 향한, 내가 나에게 물어보고 대답해 보았다. 어색하고 미숙한 부분이 훨씬 많아 매일 주눅 들 때도 있었지만 그건 하루 중 일부에 부족했다.
그럼에도, 여행은 여행이었다.
나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긴 했지만 결과물로 내게 다가오진 않는다는 걸 집으로 돌아와 깨달았다. 이제부턴 매 순간의 선택이 달려있고, 한 달간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던 것 대로 실패하더라도 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시간을 쓸데없는 일에 집중하고 싶지 않았고 나를 위한 생산적인 일을 해야만 한다고 스스로 등을 떠밀었다.
여행은 끝났지만 여행에서 내내 울고 다짐했던 마음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계속되어야만 했다.
가족과의 마찰과, 친구들과의 만남도 멀리하게 되면서 집에서도 밖에서도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숨통이 막혀 메말라갈 거 같았다.
그러다 다시 제주도로 떠날까 고민하던 찰나에 느닷없이 제주도 어느 한 가게에서 직원 모집을 하는 글을 발견했다. 숙소지원이라는 글을 보자마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제주도도 사람이 사는 곳인데 내 일 하나 없을까, 살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일 한번 해보자 싶은 마음에 연락을 했다.
그러자, 사장님과 다음날 연락을 했고 면접 보러 가고 싶다는 말에 전화가 와서 한참을 얘기 끝에 면접 없이 나를 채용하고 싶다고, 대신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의 제주행은 확정이 되었다.
십이월, 겨울이었다.
나에게 있어 두 번째 제주살이는 억세게도 살았고,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방향성을 찾는 과정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파운드케이크와 밀크티를 팔았던 곳. 아르바이트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정직원으로 일했던 곳이었다.
처음엔 일이 늘지 않아 너무 힘들었는데 그럴 때마다 저녁에 알로하서재라는 곳에 책을 보러 갔다가 바로 앞에 협재 밤바다를 보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지길 바랐다. 겨울이 한참일 때, 숙소에 친구들은 다 자고 있는 와중에 혼자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온 적이 있다. 수두룩 빽빽하게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는 사람은 거리에 나뿐이었다. 필름으로 찍은 사진도 형편없게 나왔지만 나는 그날 밤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가게에서 했던 모든 작업이 너무 즐거워서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고, 그때 사장님과 진지하게는 아니었지만 나중에 일본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포부를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런 날이 올까? 싶었다.
붕 떴다가 마음만큼 따라주질 않아 울적한 날도 있었지만 솔직해질 수 있는 곳이 있었기에 마치고 퇴근길에 늘 위로받을 수 있었다. 나는 공간과 장소가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제주도에 와서 깨달았다.
지난날과 비교해 즐거운 일을 하며, 변덕스러운 날씨 따라 같이 변하는 바다를 곁에 두며 살다니, 가장 많이 웃고 울기를 반복하던 스물세 살은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풍요로웠다.
나의 목적은 제주살이가 아닌 일을 배우러 온 것이었으나 장소가 ‘제주도’라는 것이 한몫한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휴무가 얼마나 기다려지던지 대부분 수요일에 정기휴무를 다는 가게가 많아서 아쉽기도 했는데 늘 부지런하게 집 밖을 나섰다.
개들과 고양이가 많았던 한림항, 협재, 금능. 겨울은 해가 빨리 저물어서 밤바다 밖에 볼 순 없었고, 여름은 같이 일하는 언니 오빠 차를 타고 대충 걸터앉아 해지는 모습을 보곤 했다. 검정치마 노래를 들으며 드라이브했던 날을 아직도 추억한다. 놀러 온 관광객들의 신난 모습들과 함께 점점 스며드는 색과, 소리마저 ‘아, 너무 좋다’ 라며 열심히 일한 보람을 실컷 느끼곤 했다.
혼자 보낸 날 보다 같이 보낸 날들이 많았고, 또다시 혼자가 되어 스스로를 더 성찰해 보는 시간도 가지기도 했다.
돌담 집에서 하숙 생활, 왠지 노력파라는 말이 싫었던 제주 생활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 일, 그 속에서 사귄 동료들과 연이 닿아 만난 사람들.
날씨 좋으면 올라가던 오름과 저절로 향했던 바다 가는 길, 가방 안에 가지고 다녔던 메모장과 필름카메라.
“그래도, 돌아갈 곳이 제주도라 다행이다”
제주도에서의 기록이 늘 행복하진 않았지만 서투른
와중에도 그런 문구가 적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