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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킴 Nov 11. 2024

자연의 섭리가 그런가 봐

내게 맞는 시간이 필요해요.




이겨내고 싶었던 것

나는 비교적 손이 느린 편이다. 빨리 흡수해서 실전으로 옮기는 과정이 아주 취약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다 보니 일을 처음 배우는 단계에선 너무 신중히 하려다 아주 중요할 때 손이 삐끗해 버리는 무참한 결과를 만들어버리곤 한다.

한숨과 동시에 노심초사하며 만든 결과물은 늘 속수무책이었고, 이렇게 밖에 못하는 나 자신에 답답해했다.

그렇게 한 이 개월 정도가 흘렀다.

혼자서 매일 남아 뒷정리하던 나는 드디어 시간차를 줄일 수 있게 되었고, 아주 조금의 여유도 생기기 시작했다.

일찍 나와 일을 시작해도 저녁 먹을 시간 때 즈음 끝이 나니 내 적성에 너무 안 맞는 일인가? 싶어 고민도 했었다.

그렇지만 역시 내가 열심히 만든 과자를 상자에 넣어 포장할 때, 손님에게 전달하는 그 시간이 그날 기쁨이었고 맛있다고 말해주는 손님 덕분에 책임감을 더 가질 수 있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성껏 만들어 내고 싶었다.

겨울바람이 참 세다. 올해는 제주도에서도 정말 흔치 않게 눈이 내렸고, 공항 또한 폐쇄되었다고 한다.

부엌에서 바라보는 감귤 나무에 달린 귤이 아슬아슬하다.

나는 어떤 생각으로 자꾸만 바라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귤이 다 떨어지진 않았을까?

걱정이 되어 창문을 자주 열어 확인하고 했다.

푸르르한 나무의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로 살다 다시 피어나는 이 모든 순환 과정을 자연의 섭리라고 하지만

어째 조금만 더 버텨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신기하게도 나무 한그루도 늘 같은 모습을 띄진 않는다. 사계에 따라 알게 모르게 변화를 거친다. 우리의 바람대로 크지 않고 인간의 손을 그다지 타지 않는 유일무이한 존재인 것이다.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고, 가꿔주며, 고독하다가도 머지않아 열매를 맺는 시간을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그렇게 계속 살아갈 수도 있고 마무리를 짓게 될 때도 있지만 그건 비극이라기 보단 섭리에 가깝다고 느낀다.



조화로운 조합

흐린 날씨가 맑아지는 것과 같이 장소, 시간과 별개로 조화로운 조합들은 곁에 늘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비가 내린다고 했지만, 일주일에 단 한 번뿐인 휴무 날이라 밖으로 슬금슬금 나가고 싶어졌다.

금능 해변 쪽으로 걸어가 외관은 굉장히 오래된 돌담집을 개조한 카페로 들어갔고, 드립 커피를 시킨 후 한참 동안 책을 읽었다.

평소에 비 오는 날을 아주 좋아하는데 빗소리를 들으면서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치유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허름한 집을 개인의 취향에 맞춰 꾸민 주인장의 솜씨에 몰래 감탄을 했다.

변하기 급급한 새것의 향도 어쩔 수 없이 세월이 주는 안정감과 견고한 힘을 이기기엔 쉽지 않을 터이다.

오랜 세월을 차곡차곡 쌓은, 투박하지만 늠름한 자태는 그대로 두어도 거부감이 쉽게 들지 않는다.

비가 그치자 밖으로 나왔다. 약속 장소에 가기 위해 협재 쪽으로 다시 걸어가는데 알록달록한 지붕 사이에 보이는 새파란 바다를 보자 내 마음도 함께 풀렸다.

빛바랜 색이 가진 분위기는 따뜻하고 다정해서 늦은 오후, 분명 밖임에도 불구하고 공간 속에 갇혀있는 느낌이 들었다.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마을과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닮아있다고.

나는 내가 이곳에 살면서 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나 바다가 좋고, 곳곳의 감귤나무를 볼 때면 여전히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싱긋 웃게 되니까

우린 서로 살아가는 속도는 다르지만 같은 온도에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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