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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워치 Feb 16. 2022

러닝을 시작하게 된 핑계

내 삶에 들어온 러닝


내 삶에서 러닝이란 것을 꾸준하게 시작한 지가 2년이 넘었다. 긴 시간이라 할수는 없지만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러닝이 내 삶 안에 들어왔다고 얘기해도 크게 부끄럽지는 않는 수준인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러닝이라 함은 실내 체육관의 러닝머신이 아닌 밖에서 뛰는 것을 의미한다.


러닝이란 것을 처음 자발적(?)으로 처음 한 것은 군대에서였다.

나름 체력에는 자신 있었지만 유격훈련 때 완전군장 행군에서 중반 이후 오르막길에서 자꾸 뒤로 쳐지면서 내 군장을 잠시 다른 선임병이 번갈아 들어줘야 했던 상황이었다. 행군을 완료하긴 했지만 그날의 기억은 민폐이기도 하였고 나 스스로에게 너무나 충격이었다. 두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1년 후의 유격, 즉 상병이 돼서는 그러한 불상사가 벌어지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행군에서 뒤처지는 경험은 나에게는 큰 충격을 준 경험이었다.


그래서 유격 일정 한 달 전부터 자주 일과 종료 후에 – 주로 저녁식사 후 자유시간 – 연병장을 여러 바퀴 뛰었다.

처음엔 당장의 재미보다 미래를 위해서 뛴 러닝이었다. 하지만 뛰면서 생각보다 집중도 잘되고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 시간만큼은 무언가 나 스스로가 주체가 되서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감정이었다. 물론 원래 러닝의 목적 - 유격 행군 때 군장을 메고도 여유 있게 행군을 하는 것 - 을 달성했던 성취감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감정과 경험을 하게 되었다.


전역 후,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러닝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러닝을 위해 밖에 나가기까지의 귀찮음, 그리고 그 밖의 러닝을 하지 않아야 하는 수십여 개의 핑계들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오늘은 피곤해서, 잠을 더자고 싶어서, 날씨가 별로라서, 일이 많아서, 운동화가 없어서, 운동복이 없어서, 게임을 해야 돼서, TV를 봐야 해서, 술 약속이 있어서 등 여러 가지이다.




그러던 어느 날, 러닝을 처음 시작한 날, 러닝을 한 이유는 오히려 반대로 러닝을 반드시 당장 해야 하는 핑계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날은 밖에 나가서 운동을 하고는 싶은데, - 그 당시 나는 싸이클(로드 바이크)을 많이 하고 있었다 - 그런데 그날 장마철로 인해 비가 내리지 싸이클을 탈 수 없었다. 물론 비가 와도 싸이클을 탈 수는 있지만 노면이 미끄럽고 시계가 안 좋아 위험하기 때문에 안타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다. 앞으로도 장마 예고로 계속 비가 내릴 것 같다.


결국 비는 내리고 밖에서 운동은 하고 싶고, 그런 핑계로 러닝을 했다. 원래 러닝을 했던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러닝화도 없고, 러닝 복도 없고, 어떤 코스로 뛰면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냥 신발장을 뒤져보니 너무 오래돼서 실내 헬스장에서나 가끔 신는 가벼운 운동화를 찾았다. 그리고 아무 트레이닝복을 꺼내서 밖에 나갔다.

일단 아파트 단지를 최대한 넓게 연병장처럼 뛰었다. 비가 너무 심하면 바로 집에 들어올 수 있도록..빗줄기가 점점 굵어졌지만 내리는 비만큼 기분도 좋고 시원했다. 자신감이 생겨 아파트 단지 밖의 공원으로 향했다. 


달리면서 체온이 올라갔지만 시원하고 내리는 빗줄기로 적당하게 체온이 유지되어면서 상쾌함을 느꼈다. 비 냄새와 흙냄새, 나무향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묘한 기분을 들게 했다. 마치 숲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마치 나를 힘들게 하는 세상의 골칫거리들 속에서 잠시 벗어나, 상쾌하고도 새로운 세상 속으로 들어가 숨 쉬고 있다는 자유로운 기분이 들게 했다. 



너무 오래 뛰는 건 아닐까 하는 순간 마침 빗줄기가 거세지면서 집으로 들어왔고 샤워를 하는데 기분이 무척 좋았다. 마치 어렸을 때 재미난 놀이를 하고 돌아왔던 순간의 기분처럼 내가 알지 못했던 즐거움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날부터 러닝을 꾸준히 하게 되었다. 러닝을 하면서 나의 삶은 더욱 다채롭고 풍요로운 감정과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마치 무채색으로 이루어진 기본 스케치에 때로는 화사한 파스텔톤이, 때로는 짙고 무거운톤으로 생동감을 입혀주는 그림처럼 말이다.


그날 하필 비가 내려줘서 너무 감사하다. 나에게 이렇게 멋지고 즐거운 경험을 주게 해 주어서, 그리고 아마도 평생 함께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취미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어서 말이다.



소중한 그날의 러닝이 러닝 애플리케이션에 기록되어 있다. 동내 한 바퀴 5Km를 달렸다.




지금 뛰지 않을 핑계가 수십 가지일 수 있지만

지금 당장 뛰어야 되는 핑계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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