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 또는 맹상, 그리고 명상.
우울할 때 우울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벗어남의 과정은 시작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 말은 조건의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햇빛을 30분 쏘인 이후 15시간 이후에 멜라토닌이 분비되기 때문에 그 무렵 우리는 잠을 자게 되고, 잠을 통해서도 감정은 리셋된다.
우울이란? 현재 진행되는 삶과 살고 싶은 삶과의 차이로 인해서 우울증이 온다고 한다. 삶에 대한 불만의 작용이 우울함에 머물게 할지라도 결코 그 결과에 자책하지 말아야 한다. 우울이란 결과이다. 욕구의 반영일 뿐 결코 그 욕구가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이 결과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새로운 결과를 가져온다. 결과는 통제할 수는 없다. 해로운 마음이 작용해서 더 나쁜 상황으로 몰고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 인간은 6가지의 감각기관을 지닌 존재이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5가지 감각 외의 마음 또한 대상을 알고 느끼는 감각기관이다. 즉 우리 존재란 몸(물질)이 있고, 마음(정신)이 있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어떤 대상에 가 있기 마련이다. 사실 대상은 중립적일 뿐, 어떤 마음으로(색안경 또는 필터) 보느냐가 관건이 된다. 정신(마음)이 물질을 만들어 내기도 하기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으면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신경전달 물질, 호르몬 분비의 변화가 온 것이다.
아비담마에 의하면 우리의 정신활동에는 우리가 인식하는 정신활동(의식)과 인식하지 못하는 정신활동(무의식)이 있다. 이것을 바왕가(bhavaṅga), 존재 유지 심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우리의 삶을 밀어 부치는 힘으로 이해한다. 무의식은 자동반사적인 행동 또는 말, 생각의 흐름이다. 무의식은 자신보다 타인에게 더 잘 보일 수도 있다. 일상생활을 통해서 자신 안에 있는 하나의 명제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통해서 추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엇인지 자각하는 것이 관건이다. 자신에게 어떤 색깔의 필터(무의식)가 작동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알게 되는 순간부터 농축된 에너지가 힘을 잃는 과정은 시작된다.
대개 사람들은 익숙한 감각을 느낄 때 안도를 느끼거나 바르다고 여기고, 낯선 감각에 동요하거나 당황한다. 감각을 객관적으로 알아차리지 않는 한 우리는 감각에 속기 쉽다. 결국 느껴지는 모든 감각이 고통의 씨앗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갈망하거나 혐오하게 되는 경우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는 있지만, 부정적인 감정에 젖어 있을 때 우리는 불행을 느끼기 쉽다. 빨리 벗어나야 한다, 즉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하려 노력해야 한다. 일어나는 생각을 억제하거나, 혐오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을 알아차림으로써 우리는 그러한 감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동시에 생각이나 감정 또한 몸 어딘가의 감각과 함께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몸을 관찰할 때는 느끼는 것이 우선이다. 먼저 느껴야 알 수 있다. 느낌에는 옳고 그릇된 것이 없다. 감각은 다만 느끼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느낄 수 있다. 느낌에는 우리의 자유의지가 작용하지 않는다. 느낌에는 이유가 없다. 다만 주어진 사실을 맞이하는 것일 뿐이다. 유쾌하면 유쾌하다고, 불쾌하면 불쾌하다고 느끼는 자연현상의 일부이다. 우리의 의지로 느끼는 감각을 제어할 수 없다. 불쾌한 감각을 느끼더라도 알아차리면 된다. 그 느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있는 그대로 그 감각을 관찰하고 인식함으로써, 그 느낌으로부터 벗어남의 과정은 시작된다. 여기서의 관찰이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지속적인 관찰을 말한다. 좋은 감각이든 싫은 감각이든 객관적인 알아차림이 필요할 뿐이다.
마음 또한 감각과 함께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 일 뿐 설령 부정적 감정이 올라올지라도 알아차리면 된다. 마음에 대한 관찰은 섬세하게 그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여기서 섬세하다는 것의 의미는 정확하게 보는 것을 말한다. 때로 사람들은 순간의 기분을 덮어버리기 위해, 방어기제 인 합리화(생각)로 아량과 도량이 넓은 사람인 척하며, 그 순간을 외면하거나 회피하고 스스로 기분 나쁘지 않은 듯, 아닌 척 자신을 속이기도 한다
관찰에는 자세가 중요하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들여다보는 태도를 말한다. 태도란 카메라의 필터, 색안경의 렌즈 같은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시각이 치우쳐져 있는지를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용납하고 하지 않고 나누고 분류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란 판단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남 보듯이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남을 보듯이 힘을 빼고 자신을 그렇게 보는 자세가 중요하다. 부정적으로 느끼는 것을 아는 것일 뿐,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갑자기 부정성이 긍정성으로 바뀌지 않는다. 부정이든 긍정이든 다 알아차리는 것이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감각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세상의 끝, 피안으로 가지 않는 한 감각을 느낄 수밖에 없다. 몸은 조건에 따라 변하는 자율적 현상 일 뿐, 살찐 나를 보고 날씬한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고 해서 따르는 것이 아니다. 몸은 치유하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마음은 조건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때로는 순식간에 변화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반복훈련이 필요하다. 몸이 아플 때 몸이 아프지 않도록 돌보아야 하고, 마음이 아플 때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