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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jebell Jul 17. 2023

견뎌내야만 할 때

견디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요즘 세상에 사는 우리들은 그 어떤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유혹에 시달리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깨어있는 거의 모든 순간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고 관심을 끌려고 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미루고 원하는 일들을 하는 데 있어서 세상이 자신에게 대신 변명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삶은 점점 인내와 견디는 것보다는 자신의 욕망이 억눌리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삶은, 인생은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우고 있다.


아기 때부터 어른이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무수한 인내의 시간을 지나왔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참는 순간이 있고 어른은 어른으로써 견뎌야만 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삶을 사는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짐을 지고 있다. 그 짐이 더욱 무거워지는 순간 그 짐을 벗어던질지 조금 더 지고 갈지는 자신의 선택일 뿐이다. 그러나 삶의 무게에서 오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 고통을 이겨낼 힘을 얻게 된다. 우리는 이미 크고 작은 경험으로부터 그것을 알고 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인생에 있어서 즐거움의 순간에서 보다 고통과 괴로움의 순간에서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단지 고통을 느끼는데서 배움이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 견뎌내는데서 현명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이였을 때 우리를 힘들게 했던 일들이 지금은 우리를 더 이상 힘들게 하지 않는다.


자녀를 키울 때, 질병이나 사고로 아플 때,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 속에 있을 때, 죽음으로 인한 이별로 슬픔에 잠겨 있을 때, 끝없는 실패에 절망하고 있을 때,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 그리고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문제등에 직면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 사실 우리는 견디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심지어 세상 모든 것이 날 미워하고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움에 휩싸여 그만 그 짐을 내려놓고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 영원할 것만 같던 그 순간이 지나가고 다른 문제가 다가오기 전 찰나의 휴식기가 찾아온다. 그때 우리는 어떤 한 관문을 통과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견뎌냈던 과거의 순간들을 되돌아보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조금은 현명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계속 견디고 견디고 견뎠어도 지나고 나서 다 잊어버리는 사람은 모든 것이 되풀이돼도 여전히 모든 것이 새롭다. 제대로 견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견디는 대신 문제에서 오는 괴로움을 회피한 것이다. 자신의 행동에서 그 어떤 의미라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견디는 힘은 조금도 커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토록 인내심이 없는 사회에서 인내라는 것이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삶이 주는 문제에 견디기보다 회피하려는 경향은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보편적인 행동 양식이다. 견딘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해낼 수 있지만 누구도 끝까지 해내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한평생 꽃길만 걷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인생은 견디는 것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삶을 견디어 내는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 보다 더 큰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삶에 고통을 회피할 수 있는 경제적이고도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것에 있다. (그런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음에도)


어찌 되었든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이 시간을 견뎌내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것이 위안일 수도 있겠다. 나만큼 힘든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 이기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라는 것은 나 역시 이 시간을 누군가처럼 씩씩하게 견뎌낼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기대만큼 자기 자신이 잘 견디지 못해 실망할 수도 있다. 포기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끝없이 밀려온다. 비관적인 생각에 이 고통이 계속될 것이란 믿음이 굳건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삶은 변화무쌍한 날씨처럼 어느새 또다시 달라져 있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건강'해질 수 없으며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다. 물론 내게도 고통이 없는 날이란 드물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 앞으로 다가올 것들에 또다시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고 운명을 사랑하게 된다."              

                      - 헤르만 헤세


그렇다. 인간은 살아있는 한 고난의 연속인 삶을 견뎌내는 그런 시간들을 계속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그 시간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견디고 나면 주어지는 잠깐의 달콤함, 보상, 또는 휴식. 그것은 견뎌내고 살아남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다. 그래서 다시 그것들을 맛보기 위해 시작되는 견디는 시간들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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