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따스해요!
세상 사람들에게 별로 기대하지 말자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착한 사람들이 세상엔 이외로 많이 존재한다고도 생각한다. 그것이 당신과 나는 아닐지라도 착한 사람들은 존재만으로도 타락한 이 세상을 그나마 그들의 착함으로 중화시켜 주고 있다. 아무리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고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면이 있다고는 하지만(사람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독특하고 특별한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은 타인에게 친절함을 발휘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보통 사람들은 그래야 마땅한 상황에서 친절하기 마련이지만 이런 종류의 특별한 사람은 전혀 친절을 베풀지 않아도 이해되는 상황에서까지도 친절을 베푼다.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 정도로 나눠볼 수 있는데 첫째는 받은 친절과 배려에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이들은 자신이 받은 친절에 어느 정도 보답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자신들이 받은 친절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을 향한 친절과 배려가 마치 그들 자신들이 마땅히 받을만한 가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전혀 감사를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기대보다 그들에게 친절하지 않는다면 그것에 화를 내고도 남을 존재들이다.
사람들이 이처럼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서로 다른 존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아무리 서로 다른 배경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람이란 존재는 홀로 살 수 없는, 다른 이들과 공생할 수밖에 없는 생물이다. 그렇기에 친절이란 것이 어쩌면 오랜 시간에 걸쳐 인간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한 전략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진화론에서는 인간이 이렇게 낯선 타인에게 친절함을 보이는 이유로 유전자적 진화를 위해 낯선 이를 받아들이는데 적응했다는 ‘낯선 이에 대한 적응’ 가설과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돌보게 하는 천성적인 진화 속에서 나타난 부산물로 보는 ‘축복받은 실수’로 어렵게 설명하고 있다. (물론, 논파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계산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아기를 향한 것일 수도 있고 귀여운 야옹이나 강아지 같은 반려동물을 향한 것일 수도 있지만 자신과 관계없는 전혀 다른 사람에게서 받았던 뜻밖에 친절에 대한 기억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어쩌면 기대하지 않았을 때 받았던 그 뜻밖에 따뜻함으로 인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같이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무언가 매일매일 이루지 못하면 뒤쳐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더욱 경쟁자인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니, 경쟁에 지쳐 누군가에게 친절하고 싶어도 할 힘이 남아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
이기주의란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행동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라고 요구하는 것이란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끊임없이 우리 자신에게 요구되는 세상의 방식은 친절이란 말과는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는 이기적인 방식이 대부분이다. 이런 세상의 방식이 사람들에게 너무나 폭력적인 방식, 이기적이기 그지없는 그런 방식이란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친절을 시작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친절에 대해 후회하는 것들의 대부분이 ‘그때 조금 더 잘해 줄걸.’이란 지나간 시간에 대한 것이다. 그들과 이렇게 이별이 빠를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었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에게, 새롭게 뭔가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친구들에게, 같이 있는 식구들에게, 어린 시절의 아무것도 몰라서 두려웠던 자신에게 조금 더 친절했더라면 어땠을까?
“친절이란 귀먹은 사람이 들을 수 있고, 눈먼 사람이 볼 수 있는 단어.”
<마크 트웨인>
친절이란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어리석은 자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아주 좋은 것이다.
당신이 오늘 보여준 친절에 너무나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