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할 용기, 거절당할 용기
용기가 필요 없길 바라지만
옛날 직장에서 주말에 세미나 참석 요구에 쉬고 싶다고 했던 나의 요구를 거절당했던 때가 떠오른다. 뭐 지금이야 주말에도 나와서 일하고 돈 준다면 감사한 마음(끝없는 육아와 도돌이표 같은 식사준비에서 빠져나올 수만 있다면)을 가지고 당장 달려 나갈 테지만 그때는 정말 주말에는 일하기 싫다는 나의 거절을 거절한 직장에 늘 불만을 품고 언젠가 퇴사할 그날의 꿈을 꾸며 직장을 다녔다.
세상에 거절당하는 것을 즐겁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거절당하는 것을 두렵게 여기거나 그래서 거절당하기 전에 거절을 해버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서로를 이상하게 여기며 누가 먼저 거절이라는 버튼을 누를지 눈치 보고 살아가는 낯설고 불편한 사람들이다. 보통의 우리들은 그럼에도 우리와 다른 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착하지만 여전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착한 우리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뜻에 무조건 맞춰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사람들도 소수 존재한다. 그리고 그 소수의 이기적인 인간들은 강하고 훌륭한 다른 사람 곁에는 안 보이고 꼭 나 같은 힘없고 소심한 사람 주위에만 몰려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뭔가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는 보이지 않는 더듬이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 번쯤은 다른 사람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주고는 후회한 적이 다들 있을 것이다. 사실 한 번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런 불쾌한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은 관계에 대한 불안에서 그 답을 찾으려 하고 성공에 대한 강의를 하는 강사들은 거절이란 극복해야만 하는 장애 요소로 보기도 한다.
그들에게 거절은 성공으로 가기 위한 작은 관문일 뿐이다. 연애에서의 거절과 영업에서의 거절은 또 다르다. 거절은 여러 가지 상황에서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고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꼭 인지하고 있어야 난감한 상황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든 저기든 거절이란 결국 권력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권력과 타인에 대한 권력은 서로 전혀 다른 두 가지이다. 그 둘은 완전히 다를 뿐만 아니라 정반대의 개념이다. 자기를 아는 사람, 자기 내면을 이해하고 자기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은 열등감 콤플렉스가 전혀 없다. 그는 매우 충만하고 타인에 대한 권력을 휘두르려는 야망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권력은 정치적이다. 그들에게는 끝이라는 것이 없다. 그들은 자신의 열등감을 느낀다.” <오쇼 라즈니쉬>
모든 관계를 갑과 을의 문제로 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갑과 을로 관계를 만들어버리는 사람은 있다. 힘을 자기에게로 끌어오는 사람, 남에게 주어 버리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사실 모든 사람들은 서로의 위치는 다를지언정 가치에 있어 동등하다. 그러나 그 사실을 잊어버린(혹은 모르는,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관계에 있어 힘의 흐름을 민감하게 느낀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그 흐름을 거부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맡겨 버리는 실수를 한다. 특히 요즘같이 위계질서가 복잡하고 더 복잡하게 얽혀 가고 있는 사회에서 그 흐름을 거부하기란 사실상 그 누구라도 힘들어 보인다.
집안 어른의 말씀을 거절해야 할 때, 절친한 친구의 부탁을 거절해야 할 때, 직장 상사의 요구를 거절해야 할 때, 거래처의 무리한 조건을 거절해야 할 때, 사랑하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해야 할 때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이 힘의 격차를 극복하고 자신의 거절에 힘을 실을 수 있는 것일까?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거절에는 부정적인 메시지(물론, 거절을 할 때 어떻게 표현하는지도 못지않게 중요하다.)가 포함되어 있음을 숨길 수 없다. 그리고 그 부정적인 메시지에 사람들은 불쾌함을 느끼고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며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그다음을 다시 기약하기를 두려워한다.
거절에 대한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좀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하다. 오히려 지금의 거절이 앞으로의 긍정적 관계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것을 경험해 봐야 한다. 그 경험은 인생에 있어 무척 소중한 것이 될 것이다. 거절이라는 부정적 메시지를 넘어 긍정의 메시지를 자신에게도 그것을 전달받은 다른 사람에게도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우리는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동반자적 시각을 잃지 않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가 거절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부분은 거절 그 자체가 아니라 거절할 때의 태도와 커뮤니케이션 능력뿐이다.
거절하고 거절당하는 것은 용기까지 필요할 일은 사실 아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생활의 한 부분이다.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마음의 크기와 여유를(그렇지 못한 요즘) 스스로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