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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jebell Nov 27. 2023

두 개를 원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난 하나만 줄 수 있는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적당한 거리 두기라는 말이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은 말이 되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에 대한 장점이 비단 전염병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은 혹은 나는 깨달아 버렸다. 그런데 다시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그것은 신체적, 물리적 거리처럼 정확하게 50cm 이상은 떨어져야 된다는 표준이 되는 기준이 사람의 정서적 거리에는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거리 두기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거리 두기의 '거리'가 다르다는 것이다. 역시 인간관계의 세계는 편할 날이 없다. 언제나 자신에게 뭔가를 자주 부탁하고 시키고 조언이라며 늘 말하는 사람이 부담스러워 거리를 둔다고 그동안 너무 쌀쌀맞게 굴었을 수도 있고, 혹은 매번 거절만 하는 자신이 그 사람에 대한 약간은 미안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이제까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조심스러운 거리 두기로 인한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길까 하는 걱정으로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 사람에게 '그래. 여기까지 내가 성의를 보여주면 알아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한 개를 조심스럽게 제안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전혀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상대편은 두 개를 요구해 오며 내가 제안한 한 개에 대한 의견을 묵살하고 오히려 그 제안에 대해 섭섭해하기까지 한다. 


사실 이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은 한 개까지가 보일 수 있는 성의의 모든 것인데 상대편은 두 개가 아니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상대편을 떼쓰기의 달인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의 한 개를 존중해 주지 않는 그의 태도는 사실 그다지 좋은 태도는 아니다. 상대편에서 나를 보자면 어쩌면 이기적인 사람처럼 보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자신이 조금 더 떼를 쓰면 들어줄 것 같은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문제는 여기서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조정하고 형식적인 관계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관계의 사람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있다. 


보통은 만들어진 가족들의 관계에서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 더 불행한 경우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가족 또한 다르지 않은 경우도 있긴 하다. 이런 경우는 보통 내가 가장 약자의 위치에 있다. 나도 알고 있고 상대방도 알고 있고 모두가 그렇게 암묵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 역시 문제이다. 이런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와 인내심과 체력 또한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이자 사랑하는 사람인 남편과의 관계에서가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다. 사실 나의 한 개와 남편의 두 개가 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우정과 사랑으로도 극복되지 못하는 차이인 것이다. 차라리 시댁 식구들이나 친정 식구들, 친구들, 동료들은 떨어져 있는 시간이 있기도 하고 어쨌든 마음만 먹으면 안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남편과는 그것이 잘 안 된다. 물론, 이혼과 별거를 제외로 두고 하는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남편과 모든 것을 나누고 싶은 내 마음과는 다르게 그는 늘 나에게 두 개를 요구하고 떼를 쓰고 섭섭해하고 삐진다. 이럴 때 다른 사람들에게 와 마찬가지고 기준을 세우고 울타리를 세워 남편에게 이 이상을 요구하지 말라고 똑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사실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 행동을 해야만 하는 나 자신에게도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렇게 행동하는 순간 남편이 나에게 더 이상 특별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까 봐 두렵기도 하다. 뭐가 옳은 것인지 헛갈리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분명 신혼인 건가?라는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겠다. 지금 결혼생활한 지 이미 오래된 현재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예외란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때때로 남편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아이를 육아할 때와 마찬가지로 행동의 일관성은 무척 중요한 점이다. 이것은 누구와의 관계에서도 같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우리나라 특성상 가족과의 관계는 언제나 치외법권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가 그 언젠가 예외가 한 명 정도는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환상 속에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환상적인 관계를 이루고 계신 분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 관계가 내가 아닐 뿐이다. 나는 남편과도, 자녀와도 더욱더 거리가 필요한 관계라는 것을 살면 살 수록 느끼게 된다. 나를 존중해 줄 것을 요청하고 나 역시 정중하고 예의 있게 그들을 대하는 것이다. 이것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삶이 힘든 것이다.


관계에 있어서 그럴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노력하면 된다. 그리고 삶에서 더 노력하는 사람은 더 발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요즘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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