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하루가 다 갔네
달팽이와 거북이는 느림의 표상이다. 거북이를 자연에서 본 적은 없지만 달팽이는 비 오는 날 길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어릴 적을 떠올려 보면 비 오는 날 학교에서 친구들과 달팽이를 구경하였던 기억이 있다. 하도 느리게 움직여서 다른 장난을 하다가 보아도 달팽이의 위치는 크게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달팽이는 갑자기 시공간을 가로지른 듯이 사라져 버렸다.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달팽이를 발견하진 못했었다. 분명 처음 봤을 때의 속도대로였다면 이렇게 완벽하게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었겠지만 달팽이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속도를 사실 숨기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는 것 것 중 하나가 바로 '빨리빨리' 문화란 것은 이미 유명하고도 오래된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부정적으로 쓰이던 이 빠름의 문화는 요새는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되면서 긍정적인 부분을 지니게 되었다. 사실 빠르다는 것은 좋고 나쁨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그저 속력을 나타내고 있는 말일뿐이다. 누구에게 빠르다는 것은 필요한 부분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빠르다는 것은 쫓아가기 힘겨움을 의미할 수 있다.
빠르다는 것은 상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적절한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면 무척이나 유익하고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그러나 빠르다는 상대적인 의미를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이 그 누구보다 빠르기를 바라게 되는 순간 힘겨움이 시작된다. 경쟁 사회에서 빠르다는 것은 분명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혹은 자녀가 그 누구보다 빠르게 목표에 도착하길 바란다.
그러나 누구보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인생을 계속해서 살아가다 보면 자신만의 삶의 여정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다. 비슷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듯이 보이는 가족조차도 사실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순간은 서로의 시간이 만나 찰나를 공유하게 되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만의 시간 속으로 되돌아가 자신의 속도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여 모든 짐을 내려놓고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인생의 속도는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빠르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고 전혀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도 있다.
달팽이는 느림에 대명사이다. 사람의 몸에 비해 작고 작은 달팽이는 온몸을 사용하여 움직임으로써 앞으로 나아간다. 사람이 보기에 매우 비효율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자신이 목적하는 곳으로 마침내 이동을 하게 된다. 옛말에도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고 하였다. 산을 옮기는 데 있어서 빠르고 느린 것은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노인의 시대에 하지 못한다면 그다음 세대로, 또 그다음 세대로 그 뜻을 이어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해나갈 뿐인 것이다.
달팽이의 하루
보슬보슬 비가 와요
하늘에서 비가 내려요
달팽이는 비 오는 날
제일 좋아해
빗방울과 친구 되어
풀잎 미끄럼을 타 볼까
마음은 신나서 달려가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야호 마음은 바쁘지만
느릿느릿 달팽이
어느새 비 그치고 해가 반짝
아직도 한 뼘을 못 갔구나
조그만 달팽이의 하루
마음은 신이 나서 저만치 달려 나가고 꼬박 하루를 열심히 움직였지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위에 달팽이의 하루는 좋아하는 비 오는 날도 지나버리고 고작 한 뼘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멜로디는 신나고 가사는 그리 절망적이지 않다. 동요는 거기서 끝이 났지만 예쁜 아이의 목소리를 통해서 달팽이가 언젠가는 자신이 원하는 풀잎 미끄럼을 실컷 타게 될 것을 그려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빠름이 아닌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는 것이다.
한 뼘을 못 가고 나의 하루는 끝날 수 있겠지만 누군가 계속해서 그 한 뼘을 이어간다면 언젠가 원하는 곳에 느리더라도 결국 도착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