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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의미

자기 자신에 대한 재고

by zejebell

우리는 싸움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도 누군가와의 싸움은 되도록 피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좁은 인간관계 속에서 혹시나 조직 안에서의 싸움이나 불화의 소문이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에 대한 걱정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싸움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와 부딪치고 자신이 승리를 가져오기 위한 싸움에 능숙하지 못한 까닭에 자신이 없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작은 사회에서 자신이 싸움의 승자가 된다 하더라도 크게 얻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싸움은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현실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불합리하다는 생각은 늘 마음속에만 간직되고 차마 입은 그 사실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자신이 입을 뗀 순간 약점을 공격받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현재보다 더 나쁜 상황이 될까 봐 걱정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만 보는 그런 현실이 계속 이어지게 될 뿐이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불합리한 관계 속에서 다른 변화를 원한다고 하여도 결국 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희망은 없는 것이다.


사실 싸움이라는 것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른들의 수준 높은 토론으로 이루어지거나 패배를 스스로 인정하는 따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쯤은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거의 개싸움과 다르지 않은 그것이 바로 싸움이다. 누구도 자신의 싸움에서 지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얻게 되는 것이 바로 목표이고 적을 제거하고 자신이 승리하길 바란다. 그러나 그 과정은 짧게 끝나지 않을 수도 있고 나의 에너지를 고갈시켜 버려 싸움을 시작한 것을 후회하게 만들 수도 있다. 대다수의 싸움은 진흙탕 속에서 모두가 더럽혀진 채로 끝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움을 시작해야 할 때가 있다. 내가 질 것이 뻔해 보여도, 싸움을 시작하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때이다. 이때의 싸움은 어쩌면 싸워서 이길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자신을 억압하고 착취해 온 대상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더 클 수 있다. 감히 자신들에게 어떠한 싸움도 걸지 못하리라고 생각한 그들에게 현재 상황에 대한 부당함을 이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기에 앞서 나 자신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싸움은 언젠가부터 굳어져버린 나의 절망과 패배감을 떨쳐버릴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움츠러들게 되면 끝까지 두려움 속에 갇혀 싸움을 시작할 용기를 얻지 못하게 된다. 믈론 사람들이 싸우길 원하지 않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약자의 입장에서 싸움의 승산이 없기에 아예 싸움의 의지가 꺾여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싸움을 일단 시작하게 되면 더 이상 돌이키기가 어렵게 되어 현재 가진 것들 중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변화에 대한 마음을 포기해야 할까?


선택의 문제이다. 누군가는 현재가 더 소중하다고 여겨 싸움을 미룰 수 있고 부당함을 꾹 참고 살아가도 괜찮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는 변화의 시작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행동으로 옮긴다. 현재 첫 번째 싸움에서는 내가 패배할지도 모르지만 영원히 패배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싸움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짓밟힌 자신의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싸움은 적을 굴복시키기 위한 것도 있지만 자신이 보다 자신다울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도 한다.


싸움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시작하게 될 수도 있지만 모두의 변화로 이어지게 될 수도 있다. 어떤 싸움이더라도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자신이 변화를 원하게 될 때가 바로 싸움의 준비가 된 때이다.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가치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될 때 더욱 힘을 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싸움은 자신이라는 인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이러한 생각은 표면적으로 싸움에 패배하게 된다 하더라도 자신이 가치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만족감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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