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에 꽤 오랫동안 혼자 살았었다. 젊고 어렸으니까 두려운 것도 없었고 혼자 돈 벌면서 착실히 적금 들고 그렇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친구들과 만나 수다도 떨고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도 다니고 공연도 보며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풀며 즐겁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직장에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스트레스는 좀 심한 편이었다. 고객들도 만족시켜야 하고 보스도 만족시켜야 했다. 그 둘의 만족도는 겹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달랐다. 난 그 둘을 최대한 겹치게 하여 만족도를 높여야만 했다. 사람들에게 치이다 보니 당연히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어차피 집에서 혼자라 말할 필요도 없었지만 직장에서 항상 웃으며 모든 사람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대화하다 퇴근하면 정말 입도 떼기 힘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난 혼자만의 시간이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시간이 되었고 그 시간이 나에겐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친구를 만나도 적당한 시간이 되면 헤어지는 게 편했고 애인을 만나도 시간이 지나면 집에 와 혼자 쉬고 싶었다. 외로움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혼자 있는 시간은 나에게는 편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결혼을 딱히 생각하지도 않았고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것도 외롭기 때문이 아니라 다채로운 인간관계와 사랑이란 감정이 좋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 헤어짐의 시간은 나에게 전혀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하는 시간이었다. 드디어 집에서 혼자 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날 편하게 했다.
인간은 섬이라 생각했다.
이런 내가 과연 결혼 생활을 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늘 가지고 있었고 아마도 하지 않을 것이라 내심 결론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다지 노력하지도 않았고 외롭지도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런 내가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물론 혼자 있는 시간이 싫어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지금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외로움도 아닌 무언가 가슴이 커다란 공허감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나 혼자 여전히 잘 살고 있지만 완전하지는 않은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 느낌이 무엇인지 지금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아이를 낳고.... 물론 남편과 언성을 높여 싸울 때도 있고 멀게 느껴질 때도 있다.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때론 미울 때도 있다. 그러나 가족이란 것이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공허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 가족이 이 지상에서 영원히 함께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가족이 아닌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우리는 한 가족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나의 공허감을 채워주고 우리 가족이 완전한 그런 사람들은 아니더라도 가족은나에게 그들과 잘 살도록 노력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해 준다.
단점도 존재한다. 나만의 시간은 많이 줄었다. 혼자 에너지를 충전해야 하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리고 오히려 외롭다는 느낌을 결혼하고 나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 아마도 그전에 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제 가족이 생기니 가족에게 뭘 자꾸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남편이 조금 더 뭘 해주길 바라고 아이가 조금 더 잘해주길 바라는 욕심쟁이 엄마, 아내가 되어버렸기 때문일까?
사랑이란 것에 대해 결혼 전에 달콤한 맛만 기대했다면 결혼 후 사랑이란 굳건함인 것 같다. 언제나 그 자리에 모두가 잘 뿌리내리고 서서 스스로 굳건히 세상 풍파를 견뎌내는 것이다. 그 모습을 서로가 보며 힘을 내고 같이 견디고 사랑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