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불면의 시간

생각하지 않는 밤

by zejebell

머리만 대면 푹 잘자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건강하던 그 시절 잠을 잘 자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잘 몰랐습니다. 잠을 잘 못 주무시는 엄마나 할머니를 보면서 그것은 정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정말 그분들이 얼마나 힘드셨을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나도 나이 들고 늙어간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었습니다. 아마 요즘 젊은이들도 그러할 것입니다. 시간은 흘러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곳입니다. 도달하지 않은 곳을 미리 알 도리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나이 든 사람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관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운동이나 노동을 하고 나서의 잠자리는 그래도 힘들지 않게 잠에 들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두세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금방 잠에서 깬다는 점입니다. 젊었을 때는 잘 꾸지 않던 꿈에 시달리며 몇 시간에 한 번씩 깨기도 하고 어떨 때는 다시 잠을 자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다음날의 컨디션은 당연히 엉망진창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푹 잘 수 있을지 잠자리에 들 때마다 생각합니다.

'제발 오늘은 깨지 말고 아침에 눈뜰 수 있길!'


하지만 대부분 새벽에 깨서는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새벽녘에 잠이 깨서 다시 잠들고자 노력하면서 머릿속에서는 세상 복잡하고 어두운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난다는 점입니다. 긍정적이면서 낙천적인 생각보다는 다음 날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걱정과 삶의 문제와 현실에 대한 불만들, 피하고 싶은 일들과 여러 고민 등이 계속해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생각을 비약시켜 부정적인 결론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나와 좋지 않은 관계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나에게 무례하게 대했는지에 대한 행동들을 곱씹어보면서 자꾸만 그 사람의 잘못에 집중하게 됩니다. 사실상 그 사람의 의도가 어땠는지에 대해서 보다는 그 행동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더 큰 오류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벽의 무서운 점입니다. 지나치게 감성적이 되거나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골라서 믿게 만들어 버립니다. 깊은 밤 잠에서 깨서 비몽사몽간에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잘못된 결론으로 이끄는 불면의 밤은 위험합니다. 누구는 새벽에 일부러 일어나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심한다고 하는데 불안한 마음에 잠식당한 사람은 불안한 상태에 놓인 기분을, 혹은 마음을 현재 자신과 동일시하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멈추지 않는 부정적 생각은 새벽에 불면의 고통을 가중시킵니다. 이러한 부정적 생각이 매일 되풀이하게 되면 불안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힘을 얻게 됩니다.


얼마 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끊임없는 생각이 얼마나 쓸데없고 위험한 것인지, 자신의 현실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인지 말입니다. 아무 생각하지 않는 상태 역시 생각하는 시간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생각의 꼬리를 끊어 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잠이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불면증이 찾아오면 나의 뇌는 쓸모없는 생각 곱씹기 모드가 되어 허우적대기 일쑤다. 짤막한 노래 가사가 광고에서 들어봄직한 문장과 뒤섞여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그 생각은 다시 과거의 욕구(아니면 욕망)나 인터넷에서 본 것, 누군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로 튀면서 머릿속을 기어 다니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이야기 타래를 이어간다. 휴식에 이보다 해로운 일도 없지만 나는 생각을 멈출 재간이 없다. 마치 뇌에 수건을 씌운 다음 무의미하게 넘쳐나는 생각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며 물고문을 하는 것 같다.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마리나 벤저민>




되도록 편한 자세로 누워서 눈을 감은채 생각을 멈추려고 노력합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에만 집중하고 그것에만 신경을 씁니다. 차라리 일어나 좀 더 생산적인 것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쉼은 그 어떤 생산적인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잠은 신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에도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저는 잠을 지키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오래전 우울증으로 인해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생긴 안 좋은 버릇들과 습관들을 하나씩 없애버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생각은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 그냥 놔두게 되면 수많은 가지를 뻗어 나 자신에 뿌리를 박고 결국은 나를 꼼짝 못 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지 않은 위치에 자리 잡으려는 가지들은 과감히 잘라내야 합니다.


양심에 걸리는 일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길 바랍니다. 내일에 대한 걱정은 내일로 미뤄두고 오늘 고생한 나에게 잠이라는 휴식을 주고 싶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