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더욱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우울증에 대표적인 감정이 슬픔이라면 우리 몸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은 무기력이 아닐까 싶다. 무기력은 '하고 싶으나 에너지가 바닥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스스로의 힘으로 처지를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고 심리학에선 정리하고 있다.
존 스타인백의 '에덴의 동쪽'이란 소설에서는 주인공인 애덤과 그의 가족 같은 중국계 하인인 리와 현명하고 지혜로운 이웃인 새뮤얼이 나온다. 그들은 원죄와 여러 가지 성서의 해석에 대해 자주 토론하며 대화하는 모습이 소설에 나온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인간이란 선택 의지를 통해 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위대해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의 결말 부분에 큰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그런데 무기력이란 자신의 삶에서 자유롭고 위대해질 그 선택 의지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무기력한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방관자가 되어버린다. 자신이 주인공인 삶에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마땅히 해야 했어야만 할 일들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내일에 대한 불안과 절망으로 점점 더 스스로를 밀어 넣게 된다.
무기력 역시 우울증과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상호작용을 한다. 그 결과 무기력하기 때문에 우울증이 나타나고 우울하기 때문에 무기력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문제는 무기력이다/박경숙/와이즈베리>
계속되는 피로감과 그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지게 되면 간단한 일상조차 어려움으로 다가오게 된다. 점차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결국 안전한 자신의 침대에만 머물게 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무기력'이란 침대에 머물게 된다. 현재의 고통과 슬픔, 죄책감을 직시하지 못하거나 그것으로부터 회피하려는 마음으로 침대에서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무기력은 점점 마음을 공허하게 만들고 도움받는 것을 거부하게 하며 그대로 모든 것으로부터 잊히길 소망하게 한다. 무기력 속 시간은 멈춰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하지 못하는 마음.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은, 느끼지 못하는 마음. 무기력은 단순한 귀차니증이 아니다. 추락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자신을 구하고자 하는 자기 방어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여러 부정적인 감정을 회피하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나름의 방법들이 오히려 우울을 더욱 깊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엔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법으로 그것에 맞서는 것이다.
평화로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세상
영화 '플레전트 빌' 속에 존재하는 안전한 무채색의 세상처럼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자신 만의 세상을 꿈꾼다. 모든 사람들이 정해진 대로 행동하며 돌발 상황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친절하며 화를 내지 않는다. 누구는 재미없을 그 세상이 무기력한 사람들에게는 더없는 천국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