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중반에 러닝을 시작하다 1

운동 젬병이의 짠한 운동 프로필

by 원더풀데이

러닝을 시작한 지 만 1년째가 되는 하루다.

1년..., 쉽지 않은 숫자다.

특히, 운동이 젬병인 나에게 있어서 한 가지 운동으로 1년을 넘겼다는 건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그 한 가지 운동이 러닝인 것도.

러닝이 왜 나에게 큰 의미를 가지는지 젬병인 내 운동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려고 한다.


중학교 때인가 나는 남동생에게 탁구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그때 내가 다니던 교회 지하실에는 탁구대가 있었고, 교회 교인이라면 누구든 탁구를 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우리 교회 교인치고 어지간해서 탁구를 못 치는 사람은 없었다. 멋들어지게 스매싱을 날리는 친구들을 보면 여간 부러운 게 아니었다. 저녁마다 삼삼오오 모여 탁구를 치며 수다를 떠는 언니, 오빠,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사실 탁구를 배우고 싶었던 마음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탁구 선수 출신이셨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김정탁', 선생님 이름에도 '탁'자가 들어있었다. 순옥이랑 순덕이라는 친구에게 탁구를 가르쳐 주셨다. 그 친구들은 아마 중학교 때까지 탁구 선수로 활약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 두 친구가 탁구를 칠 때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에게 동경의 대상이었고 요새 말로 인싸 중의 인싸였다.

어쩌면 내 맘 속에 조금은 '나도 그들처럼 인싸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도 공부는 제법 하는 축에 들었고, 학급 회의 때 내 의견 정도는 똑 부러지게 말할 줄 아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게 인싸의 요소가 되지는 못했다. 평소에는 언제나 조용하고 얌전했으며 생긴 것도 그저 그런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다. 자고로 인싸란 뭘 해도 남들을 집중시킬 수 있는 화술과 유머, 춤, 노래, 탁월한 운동 실력 그런 게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내게는 하나도 없는 것들이었다. 특히 지독한 음치인 탓에 장기자랑 대회같이 대중의 관심을 받기에 좋은 순간에는 오히려 투명인간처럼 숨을 죽여야만 했다. 혹시라도 눈에 띌까 봐...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곁가지로 갔다. 다시 탁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남들 다 하는 탁구, 나만 할 줄 모른다는 게 조금은 자존심도 상하고, 그래서 꼭 배워 보고 싶었다.

탁구란 것이 상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운동이다 보니 가늠할 수 없는 실력으로 선뜻 친구들에게 같이 치자는 말을 하지 못 했다.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 사실 가늠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학창시절 체육 시간에 모두 한 번쯤은 배드민턴이나 피구를 해 보았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다부진 마음으로 임했다. 하지만 공은 언제나 내 눈과 손보다 빨랐고 내 움직임의 방향과는 반대로만 향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동생이었다. 남동생은 운동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동생에게 부탁해 보는 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몸치 탈출 방법이었다. 얼마나 비웃을지 또 얼마나 거들먹거릴지 눈에 선했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아무리 비굴해진다 해도 탁구만큼은 정말 잘하고 싶었다. 치사함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간신히 머리를 조아려 탁구대에 섰다. 하지만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고 공은 나와의 인력을 끝까지 거부했다. 결국 시작한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남동생은 라켓을 냅다 던지며 '다시는 니한테 탁구 가르치나 봐라' 며 버럭 화를 냈고 그 후로 나는 탁구채 잡는 일을 영영 포기하고 말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고등학교 체육 시간에 테니스를 배운 적이 있다. 벽치기를 10개만 하면 만 점이다. 다들 잘한다. 나만 못한다. 이번에도 동생을 데리고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테니스는 정말 쉬운 운동이 아니라며 한 번도 테니스 라켓을 잡아보지 않은 남동생에게 너라도 별 수 없을 거라는 마음으로 시켜 보았다.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던 내 공은 동생이 라켓을 잡자 마치 자석이 끌어당기는 것처럼 착착 달라붙는 것이 아닌가. 맘먹고 일부러 끝을 내야만 끝이 났다.

배구도 마찬가지였다. 내 손목을 떠난 공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시 되돌아오는 기적은 없었다.

교회 수련회를 가면 유독 배구를 많이 했다. 토스를 하지 못한 사람은 원형 대형의 가운데에 쭈그리고 앉아 언제 누구의 강스파이크가 나에게로 향할지 모를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 원형 대형의 중심에는 항상 내가 있었다.


한 번은 남자친구랑 볼링을 치러 간 적이 있다. 난생처음 해 보는 볼링이라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어쩌면 나도 볼링 정도는 잘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말이다. 남자친구는 너무도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알맞은 무게의 공을 어떻게 고르는지, 어느 포인트에 서서 공을 던져야 하는지, 던질 때 팔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그의 가르침은 너무나 훌륭했다. 나름 완벽하게 공을 던졌다고 생각했다. 꽤 괜찮은 자세로. 그런데 묘한 것이 이 '공'이라는 것이 왜 직진을 포기하고 계속 휘어지는 것인가? 처음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후로도 가족들이랑 몇 번 볼링장에 간 적이 있다. 그때마다 내 공은 축구공도 아닌데 바나나킥만 하는 것이다. 라인 절반까지 굴러갈 때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절반을 넘어서면 어김없이 기대를 저버리고 고랑으로 떨어지고 만다. 결국 한 줄기 남은 희망의 끈마저 끊어진 것이다.

나이가 드니까 요즘은 골프를 권하는 사람이 많다. 남편과 라운딩을 했다느니 태국으로 골프 여행을 갔다느니 한다. 하지만 난 언감생심이라 생각하며 귓등으로 넘긴다. '비용이 비싸서'라고 말할 것까지도 없다. 애당초 공과 나는 상극이다. 어울릴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런데(?)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접속사가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지금 달리기, 러닝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

공과는 친하지 못했지만, '공포의 엉덩이'라고 불린 내 지구력 덕분에 말이다.

절실히 원했지만 끝내 친해지지 못했던 나의 운동 역사는 이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달리는 삶을 선택하게 됐을까? 다음 편에서 그 이야기를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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