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엉덩이' 가 만들어낸 기적
1년을 넘겨 달리기를 하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달리기'라는 운동이
참고 견디는 운동이라는 점때문이다.
대학 시절, 나는 '공포의 엉덩이'라고 불린 적이 있다.
'공포의 엉덩이?'
엉덩이가 유달리 커서 100m 밖에서부터도 눈에 띄기 때문일까?
아니면 엉덩이 힘이 너무 세서 스치기만 해도 내 엉덩이에 모두 쓰러져 버리고 말기 때문일까?
아니면 엉덩이가 내뿜는 가스가 스컹크도 울고 갈 만큼 강력해서일까?
모두 아니다.
'공포의 엉덩이'란 무언가를 한번 시작하면 꿈쩍 않고 진득하니 버티는 내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대학 시절 벌써 30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출생지는 아니지만 내 고향은 부산이다. 내가 다니던 대학은 원래 대신동에 위치해 있었는데 규모가 커지면서 내가 살던 동네 옆 하단동이라는 곳에 새로이 캠퍼스가 생겨났다. 그곳은 낙동강 하구언을 끼고 있는 동네로, 부산 대부분의 주거지가 그러하듯 산을 깎아 만든 비탈진 동네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도 산을 깎아 위로 위로만 건물을 지었다. 나는 인문과학대생으로, 인문과학대는 학교 입구에 있는 공포의 계단을 오르면 바로 보이는 고층 건물이었다. 유일하게 엘리베이터가 있는 꽤 근사한 건물이었다. 처음에는 학교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왠지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은 행운이 아니라 불행의 시작이었다. 우리 과 수업은 보통 12층에서 있었는데 1, 2 교시 수업이라도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엘리베이터와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도서관도 그렇다. 단과대학에 있는 도서관이라고는 건물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작았고, 중앙도서관이라는 곳도 전교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곳이다 보니 시험 기간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집이 산을 끼고돌면 나오는 바로 옆 동네라는 것이다. 가까운 거리 덕분에 버스가 다니지 않는 이른 새벽에도 학교를 갈 수 있었다. 새벽 4시면 아버지는 오토바이로 나를 도서관까지 데려다주셨다. 덕분에 친구들 자리도 맡아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다른 학생들에게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게 아니다. 행여 자리라도 뜨면 어느새 누군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책을 경계가 애애모호한 위치로 살짝 밀치고 엎드려 있는 것이다. 정말 자는 것인지 자는 체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누워 있는 사람이랑 시비를 걸 수도 없는 일이다. 또 어떤 자리는 책은 놓여있는데 저녁이 될 때까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새벽부터 와서 힘들게 자리를 잡았을, 또 언제 나타날지 모를 사람과 씨름하고 싶지는 않았다. 차마 내 성정으로는 남들처럼 슬쩍 책을 밀쳐 놓고 앉을 수 없었다.
결국 나랑 과친구 수정이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답은 '경영대학교 도서관'뿐이다.
경영대학교 도서관이라고 뭐 특별한가?라고 생각하겠지만 특별하다.
경영대학교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산을 깎아 만든 학교라 건물이 위로 위로만 지어졌는데 그중 최고로 위에 있는 건물이 경영대학교였다. 자주 구름 속을 거닐 만큼 꽤 높은 곳에. 바로 위에는 헬기장도 있다. 셔틀을 타고 올라가지 않으면 등산을 해야 한다. 아무튼 이곳은 한 번 올라가면 좀체 내려올 마음을 먹을 수 없는 딴세상이다. 그렇다 보니 수업이 없는 시험 기간이면 경영대 학생들은 비교적 아래쪽에 위치한 단과대 도서관이나 강의실을 찾는다. 그들이 애써 경영대까지 올라가는 수고를 하지 않으니 경영대 도서관은 항상 자리가 넉넉했다.
비록 인간계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 속세의 즐거움을 맛볼 수는 없지만 새벽에 한번 올라가면 밤늦게까지 주야장천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다. 당시 제법 공부를 했던 나에게는 천혜의 장소였던 것이다. 밥때가 아니면 도서관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화장실도 밥때를 기다려 갔다. 이후, 나에게는 '공포의 엉덩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한 번 자리에 앉으면 웬만해선 뜨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구력과 끈기의 자질은 훨씬 어렸을 때부터 내 안에 장착돼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당시에는 상급학교로 진학하려면 체력장이라는 것을 치러야 했다. 체력장이란 몇 가지 체력 테스트를 통해 급수를 결정하고 그 급수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제도이다. 멀리뛰기, 원반던지기, 윗몸일으키기, 100m 달리기, 800m 오래달리기, 매달리기(남자는 턱걸이) 아마 이렇게 6개의 종목이었던 것 같다. 여기서 내가 만 점 받은 종목은 매달리기와 800m 오래달리기였다. 단체로 의자를 들고 앉아 벌을 받은 적도 있었는데 끝까지 의자를 내려놓지 않고 버틴 것도 나였다. 좀 우스운 포인트에서의 지구력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 외에도 주어진 과제나 임무는 어떻게서든 해내고 말았고 그 성실함 덕분에 나는 선생님들께는 꽤나 괜찮은 아이로 인정을 받았다.
아마도 이러한 근성이 아직도 나를 달리게 하는 힘의 원천인지도 모르겠다. 고작 1년밖에 안 됐는데 그런 말을 하기는 좀 이르지 않은가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라테스도 해 보고, 요가도 해 보고, 헬스도 해 본 나에게 1년을 넘긴 운동은 달리기가 처음이다. 내 다리의 근력이 있는 한 계속 달릴 것이라는 확신도 느껴진다.
아직까지 나는 이렇게 강력한 도파민에 취해 본 적이 없다. 단순한 쾌감을 넘어 너무나 아름다운 세상과 행복을 맛보고 있다. 산다는 게 내게는 더 이상 괴로움이 아니다. 죽는 날까지 이 아름다운 세상을 느끼며 살고 싶다.
그런데, 나는 어쩌다 하고 많은 운동 중에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런 달리기의 참맛을 알 수 있게 됐을까? 다음 이야기에서는 러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현실 이야기를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