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돌보는 시간이 필요해
러닝을 시작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였다.
국가 건강 검진에서 공복혈당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심상치 않았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곧 당뇨로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즉 몸을 챙겼어야 했다. 40이 넘어서부터 자주 손발이 저리고 아팠다. '이 모든 게 살 때문이야'라는 생각이 들어 다이어트도 자주 해 보았다. 하지만, 다이어트는 항상 원치 않는 요요를 동반했고, 나의 굳건했던 의지도 반복되는 요요 앞에 점점 지쳐만 갔다. 게다가 한가로이 건강을 챙기기에 내 삶이라는 것이 그다지 녹록지 못했다. 딸 하나라지만 실제적인 가장 노릇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무리였다.
'먹고살기 바쁜데 병원 갈 시간이 어딨어? 에이, 좀 아프다 말겠지, 당장 죽기야 하겠어.'
라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이었다.
그런데 50대 중반을 넘어서고 보니, 문제가 달랐다.
그동안 수치로는 별 문제없던 것들이 하나둘 이상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한 것이다. 몸은 갱년기를 건너뛴 채 하루가 다르게 노화증상을 드러내고 있다. 마치 몸뚱이가 '네 삶의 고단한 무게를 견뎌내느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제발 좀 알아주지 않을래? 많고 많은 영혼 중에 왜 하필이면 너라는 영혼을 담아내느라 내가 이 고생을 해야 하니? 정말 억울해'라며 시위라도 하듯 말이다. 인생 80이라고 본다면 나의 남은 날들은 이제 살아온 날보다 짧아져 있다. 그렇게 남은 날을 따져 보자니 도미노처럼 염려의 염려가 꼬리를 물고 덤빈다.
사실, 손발이 저리고 아픈 것을 빼면 특별한 갱년기 증상은 없었다. 온몸이 달아올랐다 식었다를 반복하고 우울감과 상실감이 반복되고 호르몬 변화로 인한 여러 가지 몸의 이상 증상이 생긴다는데 딱히 눈에 띌 만한 증상은 없었다. 한 2년 불면증에 시달리기는 했다. 하지만 갱년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한국어 강사를 하던 중 우연찮게 지도교수님 소개로 한국어교육 플랫폼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제 막 시작하는 회사라 사이트 구축부터 학습 상품 기획, 강사 관리 심지어 회계 업무까지 도맡아 해야 했다. 다른 사람이 시작했다가 엄두가 나지 않았는지 입사 15일 만에 손을 놓아버렸다는 일의 후임이었다. 회사 대표는 하루빨리 성과가 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플랫폼이라는 게 한두 달 사이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달랑 나 혼자서 모든 것을 기획하고 관리해야 하는데 쉬울 리가 없었다. 일의 두서도 서지 않고 물리적인 시간도 부족하고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능력에 맞지 않는 일을 감당해 내느라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자고 버텨야 했다. 아니, 버티는 게 아니다. 아무리 잠을 자고 싶어도 그냥 잠이 오지를 않았다. 잠을 버티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훗날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불면증도 갱년기 증상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냥 넘어가는 법은 없나 보다.
코로나가 시작할 무렵 폐경이 찾아왔고 과중한 업무까지 겹치자 내 몸이 보인 이상 증상이었던 것이다. 당시 몸무게도 67kg으로 내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찍었다. 그 때문인지 자고 일어나면 어찌나 손발이 아프고 저리던지 마치 못을 박아 놓은 고문대를 걷는 기분이었다. 이러다 나도 모르는 새 세상과 이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죽음 자체가 두려운 건 아니었다. 단지 여느 부모들처럼 남겨질 자식이 두려웠던 것이다.
'아직 내겐 자립하지 못한 딸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드니 그냥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떻게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헬스도 해 보고 필라테스도 해 보고 심지어 실내 암벽등반도 해 보았다. 사흘 간 게 고작이지만 말이다.
방아쇠증후군인가 하는 손가락을 펼 때 '딸깍' 소리가 나며 잘 펴지지 않는 증상 때문에 말이다. 의사 선생님이 암벽등반은 하지 말라신다. 암벽등반을 해 보려고 했던 건 '헤어질 결심'이라는 영화 때문이다. '헤어질 결심'은 당시 장안의 화제이기도 했고 '색, 계'와 '만추'에서 워낙 인상적이었던 탕웨이가 나오는 영화이기도 해서 보았다. 과연 수작이었다. 절제되고 함축된 탕웨이의 한 마디 한 마디와 눈빛은 영화 전체를 압도했으며 오래도록 가슴과 뇌를 묵직이 누르고 있었다. 그 영화의 도입부에 탕웨이의 남편이 암벽 등반을 하다 사망하는데 탕웨이가 그의 동선과 시간을 계산하고 살해 타이밍을 맞추어 암벽 등반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까지 내 운동 역사에는 등장하지 않던 새로운 장르의 운동이다. 시선을 끌기에 상당히 매력적인 운동이었다. 인터넷을 뒤져 보고 유튜브를 찾아 보기도 했다. 실제 산악이 아니라 실내에서도 가능한 운동이었다. 탄탄하고 매끈한 몸매를 만드는 데 상당히 좋은 운동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라는 거다. 게다가 공을 사용하지 않는 운동이다. 이거야말로 내 지구력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운동이야'라며 호기롭게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듣도 못한 방아쇠증후군이라니.
나의 암벽 등반은 그렇게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다음으로 시도한 운동이 '필라테스'이다.
역시 이 또한 드라마 영향이 크다. 필라테스 강사를 하는 여주인공에게 화장품 회사 대표가 여차저차 사연으로 필라테스를 배우다 사랑에 빠지는 뭐 그런 내용의 드라마이다. 필라테스 기구라는 것이 참으로 고급스럽게 보였고 운동하는 주인공의 모습도 아주 우아해 보였다. 비용이 문제인데, 마침 찾아간 필라테스 학원에서 특별 행사를 한단다. 기회다 싶어 등록을 마치고 운동을 시작했다. 어찌나 힘들던지 돈 내고 벌을 받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운동 후 그 산뜻함이란 힐링, 힐링 그 자체였다. 무사히 약속한 10회를 채웠다. 재등록을 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인가?
때는 2023년 추석 즈음,
갑자기 찾아든 날벼락 같은 소리에,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마주해야 했고
간신히 찾은 나를 돌보는 시간을 내려놓아야 했다.
또 하나 넘어야 할 산을 맞닥뜨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