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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엘PD Oct 13. 2022

삶의 의미

삶이 무의미해요,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루하루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삶의 의미는 언제 가장 극적으로 보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더 이상 살지 않아도 될 때, 죽음의 순간 그때인 것 같다. 너무 잘 살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너무 잘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최근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2건의 자살 사건, 보육원 퇴소 아동의 죽음이었다. 막막함, 두려움 같은 것들은 형체가 없기에 매우 크게 느껴진다. 마치 빛도 인적도 없는 곳을 혼자 걷는데 뒤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비쳐오면 느끼는 두려움과 같다. 그게 고양이인지? 개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머릿속에 상상 회로는 온갖 것들을 상상 회로에 집어넣어 대며 더욱더 두렵게 만든다.

필자도 죽음을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죽음은 멀리 있는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몸 안에 갇혀, 몸이 움직이지 않는 고통은 그야말로 죽음이 목전에 다가온 듯 느껴졌었다. 삶이 무의미했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들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죽음을 위한 나의 재활의 여정이 시작됐다. 재활이 힘들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정말 너무나 힘들었다. 한번 사라진 기능들은 제 기능을 회복하기 너무 어렵고 버거웠다. 다시 사회에 나가고, 다시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 돼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은 나를 더 어둠 속으로 몰아넣었다. 하루하루가 의미 없었지만, 치열하게 살아가야 했다. 그때, 필자는!
더 잘 살아야지, 전처럼 살아야지

라는 생각은 감히 할 수 없었다. 그냥 다시 살아가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에게 재활의 시간은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었고, 희망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꽃피우는 법을 말이다. 무의미한 삶은 없다. 죽을 뻔해보니, 삶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더 잘 살 필요도, 더 발버둥 칠 이유도 없다. 그냥 하루하루가 허락되기에 아름다운 것일 뿐이었다. 나는 내가 아팠던 시간을 딛고 일어섰다. 다시 한번, 또 재발이 오든, 더 안 좋아져도 나는 삶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재활을 두 번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다. 그만큼 매우 힘들고 치열한 시간이었으니까.

삶의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때 그리고 나는 왜 살지?라고 느낄 때, 그냥 한 번쯤 당연하지 않은 시간들을 대입해 봐라! 당연히 밥 먹고, 당연한 아침을 맞고, 당연한 친구들과의 만남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당연하지 않은 가장 평범한 하루임을 감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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