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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가옥(敵産家屋)에서 (5)

위험한 울림, 사랑과 전쟁

적산가옥은 완전 통나무로 지어졌다.

내가 살던 적산가옥은

일제시대 유곽(遊廓)이었다.

즉 기생(참 낯설고 오래된 표현이다)이 있는 술집이었다.


광복 후 일본이 떠난 자리.

전쟁이 끝난 뒤

피난민들이 거주하는 적산가옥이 되었다.


콘크리트로 만든 아파트에서

층간소음(層間騷音)문제는 심각하다.


하지만 온전히 목제(木製)로만 이루어진

통나무 집인 적산가옥에서의 층간소음은

어떠할까?


방바닥에 귀를 대고 잠을 청하면

1층과 2층 사이에 넓은 공간

(이 공간은 비어있고 통나무들이 즐비하여

  울림기능이 아주 뛰어나다.)이 있다.

1층에서 거주하는 분들의 아주 작은 속삼임도

확성기 기능을 하는 공간 때문에

또렷하게 들려온다.


우리  집은 2층에서 제일 넓다.

넓어봐야 7~9평정도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9~13에 해당된 아해들이

우리  집에서 뛰어논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15~19세 해당된 청소년들이

전축이 있는 우리집에 모여

나팔바지에 청바지를 입고

LP판에서  흘러나오는 박자에 맞추어

트위스트, 뽕짝, 팝송을 들으면서

다양한 춤을 추며 논다.


이들이 노는 소리도

울림통을 통해

1층 집으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당시 아랫집 아주머니는

나무묘호렌게쿄(南無好法蓮華經)을 믿고 있었다.

방바닥에 귀를 대고 있으면

이분이 하루에 세번이상

나무묘호렌게쿄의 주문을 암송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맨처음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종종 시끄럽고 짜증나는 소리로 들려졌다.

하루는 어린이들이 집에 놀러와서

쿵쿵 쾅쾅 뛰면서 놀았다.

그날은 내가 듣기에도 심하다 한 정도로

요란스럽게 뛰어놀았다


그러자 예견했던 일이 발생했다.

기도하던 아주머니가 올라오셨다.

더욱 무섭고 놀라운 일은

아주머니 손에 칼이 들려쥐어진 상태라는 것이다.


우리모두 기겁했다.

얼음처럼 모두 얼어붙어버렸다.


"이놈의 새끼들.

 왜 쥐새끼들 모냥 이리 뛰어 다니냐?

 죽을래? 맞아 죽을래? 돼질래?"


우리모두 아주머니 손에 쥐어진 칼과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전해지는

과격한 욕을 통해

겁을 먹었다..


잠시후

꼼짝 못하고 서있는 아해들을 보고

아주머니는 아래 층으로 내려가셨다.


그순간의  정적과  공포.

마치 원자폭탄이 떨어진 후

폐허가 되어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은 공백상태와 같았다.


하지만 아해들의 우선멈춤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자 편지 왔다."

우체부 아저씨는

한다발이나 되는 우편물 꾸러미를

나에게 전해주고 사라지셨다.


36세대  각각의 가구에  전해지는

편지는 나의 손을 통해

다시 각 집으로 전해진다.


영숙이 누나와

맹구 형의 연애편지도

매주 내 손을 거친다.

군에 간 솔개형의 편지

월남으로 떠난 맹호부대

칠규의 형의 누런 편지 등

사랑과 전쟁이 담긴 소식들이

이들 가정의 웃음소리, 울음소리를  자아내어

오늘 저녁은 오색찬란한 분위기가

펼쳐질 것이다.


아직 보름달이 뜨려면

시간이 남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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