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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가옥(敵産家屋)에서(7)

전쟁과 사랑

36세대가 살아간다.

240-50명이 살아간다.

이들은 이북(以北)에서 피난온 분들이다.

함경도(咸境道), 평안도(平安道)그리고 황해도(黃海道)

그러니까 서른여섯 세대가 아웅다웅 살아감에

다양한 사투리가 뱉어진다.

게다가 아직 표준말사용이 확정되지 않았던 시기라서  

각자 입에 익숙한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 뿐 아니었다.

국가의 경제수준이 북한보다 낮았고

박정희 대통령의 "잘 살아보세"를  시행한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그래서 서른여섯세대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은   

남녀 불문하고 일용직 수준의 취업전선에서 일하고 있었다.


취업의 종류는 어떨까?


전국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다가 일년에 서너번

약일주일간 집에 오셔서 머물다가

다시 집을 떠나는 봇짐장수.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이발을 하고 면도를 하시는 부부.

남편없이 두부를 머리에 이고 장사를 하시는 분.

오늘날 재활산업에 해당되는 쓰레기 폐품을 수집해서 판매하는 쓰레기장수.

"엿 사세요 생강엿입니다.

 집에서 쓰다만 시계나 라디오

 다 받아요"하고 외치시는 엿장수.

"메밀묵이나 찹살떡"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어두운 밤을 깨우시는 분.

미군부대 식당에서 일하는 아저씨.

복덕방이라 일컫는 부동산사업자.

구멍가게 주인

우유나 신문배달하는 10대 청소년들  등

다양한 직업군이 존재했다.


적산가옥은 가운데 수돗가를 두고서

각자 살고 있는 집들이 문 하나로 경계가 지어진다.

서로 문을 열면 각자 살고있는 집안을 다 볼 수 있다.

목재(木材)로 이루어졌기에

오늘날 아파트에서 문제가 되는 방음(防音)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부부싸움은 온동네에 적나라(赤裸裸)하게

드러나는 일이 일상이었다.

골목과 함께 사라지다...-김기찬-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이중에서 두드러지게 기억나는 두 가정이 있다.

한 가정은 이발사 부부이다.

두 사람은 언제가 두손을 꼭잡고 출근을 한다.

남편은 이방을 아내는 면도를 한다.

전국을 다니지 않는 곳이 없는 듯하다.

어느 날에는 2박3일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아마 지방에 가서 일을 하시는 모양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집에만 들어오면 싸움이 시작된다.

"너! 남자가 그렇게 좋으면 그놈이랑 그냥 살어"

"아니 내가 무엇을 어떻게 했다고 그래."

"아까 그놈 얼굴 면도하면서 눈을 맞추고 실실 웃었잖아."

"그러면 얼굴을 돌려서 다른데 보면서 어떻게 면도를 하냐?"

"내가 면도를 하라고 그랬지 웃음을 팔라고 했니?"

"내가 언제 웃음을 팔았다고 그래.. 그러면 화난 표정을 면도를 하냐?"

"어쨌든 웃음 팔았잖아. 나는 그런 네가 너무 싫어."

"그러면 어쩌란 말이야. 내 덕에 손님이 많이 왔다는 사실은 알고 있니?'


이렇게 싸우면서 양은 그릇, 냄비, 베개 등 세간살이가 문 밖으로

내팽겨치진다.

"왕가당 댕가당 쿵 쨍그랑."

사실 많지 않은 세간살이라

늘 던져지는 내용물에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없었다.

더 놀라운 일은 집에 들어올 때 마다

싸우는 내용이 항상 동일했다.

생각건대 웃음의 대상과 지역이 달랐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보는데..


온동네 사람들은

이 부부가 퇴근한 시간을 모두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싸우는 모습을 통해서

모두 알고 있기때문이다.

이들이 싸우는 동안에 이웃들은 한마디씩 던진다.

"오늘 갈라서겠구만...오늘은 진짜 갈라설 것 같애."


하지만 더욱더 라운 일이 있다.

이렇게 절단날 듯 싸우던 부부가

아침이 되면 다시금 손을 꼭잡고

방긋방긋 웃으며 출근을 한다.

하루도 변함없이.

그럼에도 자녀도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60년대 잉꼬부부의 모습이다.

[포천맛집]-욕쟁이할머니집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두번째  사례를 소개한다.

이 가정은 홀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전쟁이다.

사실 전쟁이라고 하기에는 언제나 일방적이다.

홇로된 어머니는 아들을 향해서

쉬지 않고 욕을 해댄다.

욕(辱)의 내용은 상상을 불허한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향한 욕이라고 보기에는

거의 저주 (詛呪/咀呪)에 가깝다.

"옌병할 놈. 거리로 나가서 굶어죽을 놈.

 썩어빠질 놈....."

차마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욕들이

매일 새롭게 쏟아진다.


사실 그 아들은 동네에서 유명한 건달이다.

약한 아이들에게 돈을 뜯고 뜨내기들과 함께 돌아다니면서

파출소에 있는 구치소를 자기집처럼 드나들곤 했다.

그 아들 역시 입에서 고운 말이 뱉어진 것을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온갖 욕을 하면서 야단을 칠 때에는

다소곳한 자세로 모든 욕을 잠잠히 받아들인다.

한번도 어머니에게 반항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이 순간만은 효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어머니와 일방적 전쟁이 끝나고 나면

아들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다시 온동네 망나니의 모습으로 환원되어

골치거리로 살아간다.


위에서 언급한 쳇바퀴같이

늘 순환되고 반복되는 광경을

일상에서 아주 낯익은 모습으로

가슴에 담고 살았다.


오히려 이 두 집에서 다투는 소리가 없다면

욕쟁이 할머니가 조용히 시면

모두 걱정한다.


"왜 저러지...무슨 일이 있나?"

도리어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두 가정의 모습이다.


적산가옥에서 가난과 정겨움의 뒤섞인 광경은

나의 어린시절의 강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분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실까?

아니 살아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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