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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두운 세상인데(7)

내가 알지 못했던 그곳

명절이 되어 가까운 곳에

제자를 만나러 갔다.

최근 명절 풍경은 그렇다.

호텔에서 자고

산이나 바다 가까운 곳으로 놀러간다.

새로운 풍경이다.


하지만 이런 곳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암진단(癌診斷)을 받았다고 하여

그를 만나기 위해 병원으로 달려갔다.


암(cancer)이란 단어만 들어도

이미 세상과의 작별을 준비해야 하는 듯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병원의 로비에서 부터 원무과

입원실 대기하는 곳에 이르기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1980년대 약5년간

매주1회 병원선교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당시에도 병실은 만원이었다.


이들에게 명절이나 선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발걸음을 옮겨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고령화사회(高齡化社會)

그러나 내가 방문한 장례식장 입구 전광판에

소개된 분들의 사진을 보니

나이와 무관했다.


저렇게 젊은 분이 세상을 떠나다니.

저분은 곱게 늙으셨구나.


이러저런 상념(常念)에 빠져있던 순간

여기저기에서 곡(哭)을 하며

이별의 아픔을 애도(哀悼)하는데

그 슬픔의 정도는

망자(忘者)의 연령과는 상관이 없었다.


장례식장은 끊임없이 늘어선 화환행렬로 인해

전동휠체어로 다니기에 비좁았다.

복도 끝까지 지나가서

조문객을 만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빈칸은 발견할 수 없었다.

사람을 떠나보내는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저세상으로 떠나보내는 분들이

너무 많았다.


하루의 일과가 여기에서 멈추었으면  했지만

빨강색으로 칠해진 공휴일이라

미루었던 일정을 소화시켜야 했다.


이미 5년전에 쓰러져서

요양병원에 입원한 분을

문안(問安)하는 일이다.


코로나 검사지를 제출하고 나니

한분이 병상에 누워서 복도로 나오신다.

벌써 5년째 병상에 누워계신다.

코로나 시기에는 병문안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쩌다 반나절 누워있기만 해도

온몸이 쑤시고 불편한데.

약일주일동안 병실생활만 해도

갑갑함의 정도를 지나

지옥같은 느낌이 드는데

5을 지나 앞으로 더 어느정도의 기간동안

지속될 지 모르는 길고긴 시간을

침대에 누워 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할 것인가

상상만해도 답답하기 그지없다.


밤을 지나고 새 날이 밝아왔다.

북쪽의 김정은은 전쟁이야기를

입에 달고 산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뉴스는

들을 수 없다.


과거에 달동네라고 불리던 곳이

완전히 사라지지않고

여전히 우리곁에 존재한다


10kg짜리 쌀 한포대

라면 한박스

그리고 약간의 밑반찬.

정부에서 주는 명절 위문금 오만원

난빙비지원금 십만원

이  지원을 받아야하는 가난한  이웃이

참으로 많다.

게다가 도시와 시골에

홀로 지내는 독거노인(獨居老人)들을

발견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상은 밝다고 하고

더욱 밝아지리라고 외치며

오늘보다 더나은 내일이 있다고

정치가들이 외치고 있지만

이들에게

가난과 어둠이 드리워진 세상은

안중에도 없겠지.


어두운 세상이

더 어두워지는 것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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