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빠의 폭력과 방관하는 엄마
'언니!'
영숙이는 잠시 놀라는 듯 걸음을 멈추었다.
"언니?"
매우 낯 선 단어였다.
'나에게 언니라고 부를 애들이 없는데...'
뒤를 돌아다 보니 어린 친구들이 손을 잡고 뛰어오면서 영숙이를 부른 것이었다.
'나에게 언니라고 불렀니?"
영숙이는 다시 물었다.
"응... 그럼 뭐라고 불러? 언니... 동생은 아니잖아요.'
영숙이는 해맑은 표정으로 토끼처럼 깡총깡총 뛰면서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았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맑은 호수에 아주 작은 조약돌을 던져서 퍼지는 물메아리가 같았다.
'이 곳에 있는 아이들은 참 밝구나..... 그런데... 다 상처가 있을텐데..'
해가 뜨고 달이 고개를 내밀기를 몇 번을 반복했다.
영숙이의 팔에 있는 멍 자욱이 서서히 퇴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아빠"라는 말이 들려지면 영숙이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추리고 말았다.
영숙이는 몇말 며칠을 고민고민하다가 다시 상담선생님을 만났다.
"저.... 생각을 많이 해 보았는데.....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요
해 보고 싶은 것도 없어요.. 그리고 자신도 없어요..
그냥 혼자 있고 싶어요....그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양숙이는 다시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은... 내가 왜 이 곳에 왔는지.. 아시니까..'
영숙이에게 폭력을 가한 아버지는 친아버지가 아니었다.
영숙이를 낳은 아빠와 헤어진 엄마는 지금의 아빠를 만났다.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 엄마가 선택한 길은 지금의 아빠를 의지하는 길 뿐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아빠는 엄마와 영숙이를 향해서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더욱 괴로운 것은 아빠가 영숙이에게 폭력을 가할 때, 엄마는 말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가끔... 아니 종종 .. "네가 말만 잘 들으면 될텐데"라고 하는 것은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영숙이는 3년 째 이 가정에서 살고 있었다.
벌써 중학교 2학년.
더이상 참을 수 없어서 스스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리고 경찰과 관공서에서 영숙이는 가정에서 분리하여 이 곳에 오게 되었다.
"분리"
한 편으로는 폭력으로 부터 자유로와졌다는 것이 좋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자유롭지 않은 엄마가 자꾸 떠올랐다.
폭력 후유증 때문인지..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영숙이에게 또다른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손과 발. 그리고 온 몸에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이상행동(Abnormal Behavior)이 나타난 것이다.
"혹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는 아닐까?"
그저 tv에서 들려진 단어가 영숙이 자신과 연결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더해졌다.
영숙이는 자기도 모르게 무엇인가 하나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선생님과 '언니'라고 불러주는 아이들이 있는 이 곳이 조금 편해졌다.
하지만 두근두근 거리면서 콕콕 찌르듯이 느껴지는 가슴의 통증을 느끼는 어두운 밤을 날로 지새는 것이다.
오늘은 또 어떻게.....
"영숙아 오늘부터는 공부를 시작하면 어떨까?
어려운 것 말고.. 영숙이의 수준에 맞는 학습을 시작하면서... 꿈을 찾아보지 않겠니?"
벌써 10일간을 기다려주신 선생님의 부탁을 받았다.
"너 공부안해? 너 말 안들을꺼야? 네가 그렇게 해서 밥 먹을 자격이나 있어?"
늘 격앙된 소리로 명령조로 들리던 소음(noises)과는 전혀 다른 소리였다.
선생님의 정중한 부탁은 내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마치 부드러운 운율이 가득한 음악과 같았다.
영숙이는 또다시 같을 말을 반복했다.
"네.. 달리 할 것도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