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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에게 말한다(5)

1인칭으로 전개하는 예수의 이야기

<임신한 마리아

- 두려움과 함께 시작하다>

인간은 독립된 개체이다.

육체가 독립되어 있기에

마음을 공유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공감(sympathy)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한다.


사실 이는 용이한 일이 결코 아니다.


아직 임신경험이 없는 처녀 마리아.

나이가 많아 임신할 수 없다고 단정짓는 엘리사벳.


이 두 사람은

불가능(impossibility)가운데

가능(possibility)을 경험한

공감대를 소유하고 있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마음을 위로할 뿐 아니라

축복했다.


축복하는 자는 축복을 받는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모든 생명은

조건 없이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 땅을 떠날 때까지 축복을 받아야 한다.


과연 우리의 생명,

우리 가운데 다가온 생명은 축복받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축복하는데 우리는 축복하는가?


세상은 달랐다.

모세가 태어날 때

숱한 어린 생명들이

세상과 헤어져야 하는

어두운 세상이었던 것처럼,

내가

세상에 빛으로 다가갔을 때에도

상황은 동일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라마에서는

자녀를 잃은 어미들의

곡(哭)하는 절규가

시퍼런 하늘을 향해

쉬임없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분되는 일이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다림의 간절함은 더욱 긴박해진다.

하지만 반대로

기다림은 단지 기다림으로 머물고

희미하게 사라지기도 한다.


나를 기다린다는 것,

내가 기다린다는 것.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에게 시간의 길이는 무의미하다.

어차피 영원(Eternity)이란

시간의 연속도 아니고 단절도 아니다.


영원 안에 시간이 담겨 있을 뿐이다.

시간을 넘어(beyond)

영원으로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원이 스스로 자신을 제한하여

시간 속으로 침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나는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여기에 기다림(waiting)은

"때가 찼다 (The time has come)."는 표현으로 다가간다.


저주받은 땅이

생명이 약동하기를 기다리며,

버림받은 우주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길 사모하며,

잃어버린 시간들이

회복의 순간을 바라며,

희망을 잃었던 자들이

희망이 실재가 되는

그 날을

언제부터 기다려왔던가?

이제 그 날이 가까이 와 있다.

그 때가.


<마리아와 요셉을 돕는 엘리사벳>

그래도 어린 마리아 주변에는

어려울 때 찾아갈 수 있는 Mentor가 있었다.


여전히 요셉은 언어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했었다.

임신 중에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남편(비록 정혼 상태에 있었지만)과 함께 있다는 것도

커다란 의지가 된다.

그의 눈빛, 섬세한 돌봄

그리고 묵묵히 함께하는 겸허한 자세.


그는 이미 아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또한 옆에 엘리사벳이 있었다.

얼마 후 엘리사벳이 몸을 풀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들의 이름은 요한(John).


이제 마리아는

6개월을 더 견뎌내어야 한다.


엘리사벳이 출산하는 과정을 통해

마리아는 간접적인 정보를 얻고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동안 기도를 할 수 있음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었지만

앞으로 더욱더 깊은 기도에 정진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더 단단히 할 수 있었다.


기도.

나의 존재의 근원이다.


<정통성이 없는 헤롯 불의한 자는 불안해 한다.>

본래 정통성없이 지도자의 자리에 앉으면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적대세력으로 삼는다.


헤롯(Herod)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그는 왕도 아니다.

로마에게 구걸하여 식민지 영토인 이스라엘을 관리하는 지위를 가졌을 뿐이다.

결국 헤롯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한다고 의심되는 사람이나 세력이 있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않고 견제에 나섰다.


당시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 제사장이나 서기관, 바리새인과 같은 기득권자들이 주요 대상이었다.


어느날 오래 전부터 준비했다는 점성술사들이 헤롯을 찾아왔다.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분이

어디 계십니까?"

충격적인 말이었다.

불법(不法)은 또다른 불법을 낳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경쟁자라고 여겨지는 세력을 없애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두 살 이하의 남자 아이는

다 죽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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