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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데스다에서 만난 사람(2)

1인칭 시점에서 전개하는 옛예수 스토리

<베데스다에서 만난 사람-2>

38년된 병자

(ασθενεια,the weak)는

의외의 대답을 한다

선생님,

물이 움직일 때 못에 들어가도록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가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먼저 물속에 들어갑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낫게 해달라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내버려두라는 간청인가?


병자는

38년동안 이 곳에 있게 된 이유가

자신을 도와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나는 생각했다.

한두해도 아니고,

38년이란 긴 세월동안

이 자리에 있는 사람.

그는 아주 가끔

다른 사람이 치유를 받는 것을

직접 본 사람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 되었다.


이미 이 사람은

자신의 치유를 포기한 지 오래되었고,

단지 구경꾼이 되었을 뿐이다.


조금 마음이 넓었다면

치유받은 사람은

영혼이 없는 표정으로 칭찬했겠지.

“좋겠습니다. 참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하는 말은

그동안 치유받지 못한 것에 대해

푸념을 할 뿐이다.

나는 이 사람의 푸념을 들었다.


이 사람의 푸념 속에는

할 수 있다면,

나도 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습니다.”라는

간절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시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어조로 선포했다.

그는 나의 선포와 동시에

그는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와우. 감사합니다.

이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다니.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라는 말 한마디 조차

들을 수 없었다.

이 날은 안식일이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내가 행한 일에 대하여

그저 그렇게 넘어갈 리 없었다.

나는

어떤 소동(騒動)이 일어날 지

알고 있었다.

나는 이 자리를 피했다.

그 때 유대인들은

건강을 회복한 사람에게 물었다.

오늘이 안식일이다.

이 날,

네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이

옳지 않다.”

아니

이런 해괴망측(駭怪罔測)한 말이

어디있다는 말인가?

지금 건강을 회복했는데,

이 사람이 다시 병자가 되어

자리에 누워있어야 한다는

의미인가?


이런 말을 들으면,

병자는 강하게 저항했어야 한다.

당신이 정신이 있는 사람들이오?

나는 38년동안 이 자리에

누워있던 사람이오.

이제 처음 일어나 걷게 되었는데,

나보고 다시 병자의 상태로

돌아가라는 말이

맞는 말이요?

당신들 미친 것 아니오?”

그러나 병자는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누군가 내게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고 말했기에

나는 그 말을 따랐을 뿐이오.”

이 사람에게는 자신의 정체성, 건강을 회복한 사실에 대한 감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유대인들은 묻는다.

누가 당신보고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고

했는가?”

건강을 회복한 사람은 대답한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오.”

<베데스다에서 만난 사람-3>

38년동안 자신을 괴롭힐 뿐 아니라

이동조차 불가능하게 했던

질병에서 벗어난 사람.

그러나 그 사람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말했다.

그럴 수 있겠지.

그는 38년만에 처음으로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진

걷는다”는 말, “뛴다”는 말이

생각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통해서 실천에 옮겨진다.

내가 걷는 것이 맞아?

내가 지금 뛰고 있는 것이

꿈이야 생시야?”


그는

오직 자신의 변화에만

집중했을 거야.

그러니 자신을 변화시켜 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지.


안식일에

이 사람을 고쳐준 나의 행동을 통해서

나를 고소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당황해했다.

너를 고쳐준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이미 걷고 뛰고 있는 자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은

순간 당황했다.


그런데 며칠 후,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길을 가다가

나는 그 사람을 보았다.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길을 걷는 그 사람.

아직도 걷고 뛰는 자기 자신이 신기한 듯,

그는 한 걸음 한 걸음을 뛰면서

신이 나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보시오 이제 다 치료받고 건강해졌지요?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더욱 건강관리에

힘을 써야 합니다.”

그는 나를 쳐다보았다.


이제 그가 할 일이 남았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저를 변화시켜주셔서.

저를 치료하신 분이시군요.

감사합니다.

이제 제가 이 은혜에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합니까?

은혜가 너무 커서 감사의 말씀을

어떻게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 정도 감사의 표현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는 나를 보자 마자 뛰어갔다.

유대인들에게로.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 생각이 났습니다.

저를 고쳐주신 분이

저 사람. 맞아요

예수입니다.”


이 사람은 감사의 고백 대신 고자질을 했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감사를 모르는 첫 번째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 될 것이다.

그가 나를 지적하자

유대인들이 벌떼처럼 나에게 달려들었다.


이들은 안식일에 사람을 치유했다고

나를 핍박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들에게 말했다.

내 아버지께서 일하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말을 듣자 마자

더욱 흥분하기 시작했다.

예수가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고 하네.

저 친구가 하나님을 모욕해도

분수가 있지.

어찌 저런 망령된 말을 할 수 있을까?

저런 친구를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안되네.”

유대인들은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38년 사람의 건강을 회복시켜놓고,

사람으로 인하여

내가 핍박받는 것을 넘어

죽음의 위협까지 받다니.....

옛 선지자 아모스, 예레미가 생각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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