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가 부르는 소리를 따라서 거실로 나갔습니다.
"일수야.. 너 새엄마에게 엄마라고 왜 부르지 않니?'
나는 당황했습니다.
새엄마를 소개받고 지난2-3개월간 얼굴을 마주한 적이 별로 없었지요.
아침에 일찍 나가고, 저녁때 늦게 들어오고.
사실 나는 아빠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대화하는 일도 매우 오랫만이었지요.
'아빠는 내 얼굴을 기억하고 계시나?'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몰랐지요.
순간 나의 입에서 불쑥 생각지도 못한 말이 뱉어지고 말았어요.
"새엄마요? 나는 아빠에게 아빠라고 부른지도 몇년 된 것 같아요.
사실 아빠 얼굴도 가끔 희미해질 때가 있어요.
그리고.. 나는 아직 엄마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아니 매일 엄마 얼굴 보고싶은데..."
나는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몰랐어요.
해서는 안될 말을 나도 모르게 하고 말았지요.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보고 싶은데'라는 단어가 공중에서 파편처럼 채 사라지기도 전에 심하게 붉어진 아빠의 얼굴이 내 눈을 가득 채웠을 때입니다.
동시에 나는 별을 몇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파에서 멀리 떨어진 냉장고 옆에 누워있는 모습으로 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네 입에서 네 엄마를 ....감히...내 앞에서...들먹거려?"
아빠의 목소리가 얼마나 우렁찼는지... 천장에 달려있는 샹들리에가 흔들릴 정도였습니다.
더욱더 놀라운 일은 흥분한 아빠 옆에서 새엄마라고 불리는 분이 나를 그냥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너 일수.. 다시는 네 엄마...내 앞에서 입도 뻥긋하지 마라...
그리고 새엄마에게 엄마라고 불러..."
나는 누워있는 상태로 안방으로 들어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그리고 아빠의 뒤를 따라가는 그녀의 모습을 희미하게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일수야!" 다정하게 나를 불렀던 아빠의 음성이 "엄마"라는 단어에 순간적으로 변색해버린 것을 보면서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겨울이 다가올텐데...
비틀비틀거리며 나는 일어났습니다.
내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안방에서 두사림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비참해졌습니다.
빨리 날이 밝았으면...
그러나 이제 해가 창문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내 눈 앞에 아스라한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눈물이 뒤범벅이 된 얼굴을 한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목이 멘 상태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불렀습니다.
"엄.....마...."
아빠가 들으면 성난 표정으로 달려올까봐 나는 다시 조용히 불렀습니다.
"엄...마..."
엄마를 다시 불렀을 때, 엄마는 내 앞에서 사라진 지 한참 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