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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패 1승

누가 최종 승자일까?

칠석이와 병칠이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지나온

둘이라면 서러울 정도의 단짝이다.


국민학교(예전에는 이렇게 불렀다.),

중학교, 심지어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니다가

관심이 달라서 다른 대학교를 다닐 정도로

함께 자랐다.


이들의 공통된 성장배경은

같은 교회를 함께 다녔다는 사실이다.


이 둘은 다툰 적도 아주 드물어서

30년 사이에 손꼽을 정도였고

다투고 나서 다시 화해할 정도의

죽마고우(竹馬故友)였다.

결혼을 하고 난 후에도

아내와 자녀들 사이에도

매우 끈끈한 관계가 지속될 정도로

가족들 사이에도 친밀감은

더욱 두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 사이에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바둑을 둘 때

"누가 이기는가?"에 대한 것이다.


바둑판 앞에

두 사람이 마주 앉게 되면

이 때부터 신경전과 경쟁심리는

타의 추종(追從)을 불허할 정도로

뜨거웠다.


이 뜨거운 열기에 비해

두 사람 사이의 승부는

지나칠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칠석이에게 병칠이는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상태로

연전연패(連戰連敗)를 당했다.

그러나 칠석이는 "단 한번"은

이기겠노라고

항상 병칠이에게 도전했다.


99전 99패.


어느날 병칠이는

"매일 이기는 것도 힘들다."

고백과 함께 지치고 기력이 쇠한 표정으로

칠석이와 함께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바둑을 둔 지 1시간 30분여가

지났을 때,

병칠이는 순간 졸음을 이기지 못해

덜컥수를 하나 두고 말았다.


이 수는

상대방의 대마(大馬)를 살려주는 동시에

자신의 대마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악수(惡手) 중의 악수(惡手)였다.


결국 1패(敗)는 병칠이의 몫으로

돌아갔다.


이후 특별한 이유도 없이

두 사람 사이에서 바둑을 둘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자녀양육과 직장생활에 전념하느라

바둑을 둘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날 친구들이 가족들과 함께

야유회를 갖게 되었다.


약18~19년 만에 갖게된

야유회(野遊會)였다.


신나고 즐겁게 놀고

대화를 나누며

장작불과 함께 맛있는 바베큐도

즐기고 있었다.


"자 우리 어렸을 때

재미 있었던 일화(日話)를 나누어보자."


모임의 리더격인 창수가 제안했다.

장작불을 가운데 두고

한사람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차례대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때로는 박장대소(拍掌大笑)하면서

배꼽을 잡고 뒤로 넘어질 듯

서로를 쳐다보며 시간은 빠른 속도로

흘러갔다.

이미 셀수없을 정도로

수많은 별들이 밤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밤은 칠흙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이제 병칠이의 순서다.

"무슨 이야기를 하지?

참 칠석이와 나는 바둑두는 일을

매우 즐거워했어.

하지만 내가 늘 이기느라고 힘들었고

칠석이는 나를 이기겠노라고

지치지않고 도전했던 기억(記憶)이

생각난다."


병칠이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칠석이가 일어나서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병칠이에게 계속 졌어

아마 99전 99패였을꺼야.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사실이 하나있어.

내가 병칠이에게 딱한번 이겼던 적이

있어."


그러자 병칠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언제? 내 기억에는 없는데."


칠흙같은 밤은 고요했다.

사방이 짙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한사람의 작은 목소리도

큰 메아리가 되어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칠석이는 웃으면서 더 또렷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병칠아 잘 기억해봐.

우리가 가장 마지막으로 둔 바둑이

언제였는지."


순간 병칠이는 그 때 그 일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아 그 때 .... 내가 덜컥수를 두던

그날..,"


칠석이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 바둑은 내가 이겼단다.

그래서 내 전적(前積)은

99패 1승이야.

1승 99패가 아니라 99패 1승이야.

왜 그런지 아나?

실력은 병칠이가 나보다 훨씬 앞서

나보다 고수(高手)야.

하지만 가장 마지막에 이긴 자가

최종 승리자가 아닐까!

하하하 다 웃자고 하는 말이야."


모두 이 이야기를 듣고

한바탕 크게 웃었다.


누가 얼마나 이긴 것이 그리 중요할까?


모두 승자였고 즐기는 친구들이었다.


"자 우리의 우정(友情)

변치말자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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