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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론(二元論)의 함정

이분법(二分法)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나요?

어린이에게 물었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심각할 정도로 골똘히 생각하던
4살짜리 어린이는
이렇게 되물었다.
"그걸 왜 물어요?"

사실 이 질문에는
4가지 유형의 대답이 있다.
1."아빠 좋아."
2."엄마 좋아."
3."아빠 엄마 둘다 좋아."
4."아빠 엄마 둘다 싫어."

물론 이런 대답에
네가지를 더 추가 할 수 있다.
5."아빠 엄마 둘다 좋은데
아빠가 조금 더 좋아."
6."아빠 엄마 둘다 좋은데
엄마가 조금 더 좋아."
7."아빠 엄마 둘다 싫은데
아빠가 조금 더 싫어."
8."아빠 엄마 둘다 싫은데
엄마가 조금 더 싫어."
(*조금:조금에는 '훨씬 '이란 의미와

0-99까지가 다 들어있다.)


얼마나 다양한 대답이
숨어 있는가?

결국 영어에서
"either or "
또는 "neither nor "
이런 식의 질문은
유치하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가
심각한 오류를 지니고 있었다.
서구철학이 극복하려고 했던
논리의 단점이었다.



이에 비해
동양철학에서는
음양(陰陽)의 대립(對立)이나
갈등(葛藤)이 아닌
조화(調和)를 추구한다.

우리사회는 이런 면에서
매우 심각하다.
대학시험은
사지선다(四枝選多)
공무원 시험은
오지선다(五枝選多)이고
일부는
논술식(論術式)의 주관식(主觀式)형태의 문제이다.

그런데
왜 특정한 분야는
늘 둘 중의 하나를 고르는
게다가
정답도 없는 예문(例問)을 가지고
단 하나를 골라야 하는가?

게다가 둘 다 고르지 않으면
양비론자(兩非論者)로
몰아갈까?

둘 다 고르고 싶은
양찬론자(兩贊論者)가 되어
진지한 고민에 빠트리는
현실은 왜 만날 수 없을까?

여기에
다양성(多樣性)속의
통일성(統一性)
(Unity in Diversity),
혹은
다양성(多樣性)을 넘어선
포용성(包容性)
(Inclusion/Acceptability beyond Diversity)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고려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세상사는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할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 오늘도
나의 고민은 지속된다.

이를 결정장애
혹은 결단장애라고
없는 용어까지 만들어서
지적한다면 어쩔 수 없다.

진지하고 비판적 사고를
비난한다면
그대로 수용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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