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아닌 사랑
태초에
말이 있었다.
말했다.
어쩌면
주장할 수도 있다.
인류의 역사는
말과 글로 시작된다.
아무리 많은 생각과 행동이
있다하여도
말과 글로 남지 않으면
그저 "있었던 것"으로 지나가 버린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숱한 말을 내뱉는다.
그 말들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고있는가?
이것이 중요하다.
의미없는 말들은
쓸모없기에 말같지 않은
말이 된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말을 했다.
울부짖음으로 시작된
이 땅에서의 나의 첫 발걸음은
긴 한숨으로 마치는
마지막 발걸음에 이르기까지
쉬지않고 이어졌다.
얼마나 많은 말들이
내게서 나아갔는가?
마치 나의 분신인 것 처럼
나를 표방하며 빠져나간
파편갈은 말들은
때로는 허공에 흩어져버리고
아주가끔
누군가의 가슴에 비수를
들이대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내가 심사숙고해서 뱉은 말들도
의미있는 표현은 아니었다.
정치인들이 인상을 쓰며
야단치듯이 고래고래 악을 쓰며
목에는 힘줄이 굵게 솟아
떠드는 광경을 보며
"저 아해들은 TV로 생중계를 해도
저렇게 말같지 않은 말을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데
TV가 없을 때에는
어떤 모습으로 지껄일까?"
하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부흥사들도 매한가지이다.
하나님은 폭풍 속에서도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라고 하셨는데
저 친구는 왜 마이크까지 목에 걸고
방방 뛰면서 쉰목소리로 고함칠까?
앰프가 고장났는가?
컴컴한 밤하늘에 둥근 달이
휘영청 나를 밝히는데
일기장에 쓰고자하는 손이
더이상 말을 내뱉지 못하고 있다.
"쓸 말이 없네.
쓸만한 말이 생각나지 않네.
방금 쓰고자했던 말이 스쳐지나갔는데
다시 돌아오지 않네."
그래.
나를 통해서 나온 나의 분신들이
빨래터에서 두터운 이불을 발로 밟으며
자기자신 조차 다시 기억하지 않을
원망들을 하염없이 내뱉다가
주섬주섬 빨래를 머리에 이고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 같이
종종걸음으로 냅다 달려가듯이
내가 한 말도 대부분 이와 같지 않았을까?
말같지 않은 말들로
나의 인생 비망록을 채우기 싫은데.
아하!
혹 내가 한 사랑조차
사랑이 아니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