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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혀서 지내다

연약해져가는 어머니의 등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

그렇다.

사람이란 땅(earth)을 떠나서

생존할 수 없고

땅에서 분리된 삶은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은 하늘을 동경(憧憬)한다.

달 안에서 토끼가 방아찧는 일을

있는 그대로 보아줄 수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달에 착륙해서

토끼를 이끌어내고 그 자리를

사람이 차지하고 싶어한다.


달이 아니면,

하늘을 향해 더 높이 올라가야 하고

그래서 바벨탑을 쌓아 오르거나

히말라야 산 정상을 두발로 정복하고

부활한 예수도 하늘로 올라가고

현대에 와서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을 세워간다.


성공이란 단어가 함의하는 것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고

이를 승진(昇進)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러한 욕망조차도

도무지 땅을 떠날 수 없는 나에게는

사치(奢値)에 지나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에서

"공중살이(living in the air)"

어머니의 등에 업혀 이동했을 때이다.

두다리에 힘이 사라졌기에

어머니의 등이 아니면

그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다시말하면

나의지(意志)와 내의도(意圖)와 무관하게

나는 어디론가 가곤했다.

어머니가 가야할 곳이

곧 내가 가야만 하는 곳이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예배당, 시장, 동네를 오고가다가

급기야는 국민학교라는 곳까지

가야만했다.

사십대중반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등

이미 네자녀를 등에 업어 키운 그 등은

서서히 연약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공중살이는 잠깐 잠깐 이어졌고

나머지 인생은

땅바닥 껌이 되어 살아졌다.


급기야 어디에선가 얻어온

허름한 중고 유아차(乳兒車)에 실려

국민학교에 다니기 전 까지는

땅바닥 껌딱지 인생은 지금까지

숙명적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나의 어린 삶에서

유독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동네 여자아이들과 함께 했던

"공기놀이"였다.


참 신기했다.

"공기돌놀이"가 되야 정확한 표현이지만

우리는 "공기놀이"라고 불렀다.


얼마나 공중부양(空中浮揚)을 희구했다면

놀이명칭이 그리되었을까?


그당시 어린 나에게

또다른 놀이가 있다면

푸른 밤하늘에 떠있는 별들을

손가락으로 짚어대며 세어가는 것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역시 하늘을 바라보며

꿈을 세어가는 것이

땅바닥 껌딱지 인생의 최고의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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