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전화를 받지 않기로 하니까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숨 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할머니가 무슨 잘못이 있다구.
엄마가 없는 빈자리를 채우시느라고 고생만 하셨는데.'
하지만 전화로 할머니께서 하실 말씀을 나는 이미 알고 있기때문이다.
할머니는 우리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신다.
결혼 후 일찌기 혼자되신 할머니는 아빠를 키우시느라고 고생을 많이 하셨다.
할머니는 아빠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좋다고 하신다.
엄마가 아빠와 헤어지게 된 배경에는 아빠바라기인 할머니도 일조했다.
할머니는 아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아빠편만 들었다.
"사내가 바깥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야"
아빠가 바람을 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내가 열심히 살다보면 어찌 여자가 안꼬이겟냐? 그렇지 않은 것이 무능한 것이지."라고 할머니는 말씀하신다.
항상 엄마는 어떤 상황에서도 잘못을 저지르는 범죄자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아빠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아빠의 폭력을 당했을 때이다.
"아빠가 항상 옳다. 너희는 언제나 아빠에게 잘못 했습니다라고 용서를 빌어라."
할머니의 말씀은 고장난 녹음기와 같았다.
아마 내가 전화를 받으면
"네가 어찌 그럴 수 있냐?
다 너희들 잘 되라고 애비가 그리한 것인디
어찌 네가 그리했느냐
얼릉 네가 먼저 잘못 했다고 싹싹 빌어라"고 하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 생각 저 생각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정신차리기 위해서 방에 돌아와 앉았다.
공부를 마친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뛰어들어온다.
"어! 형아 먼저 와 있었네!"
"형 나랑 축구하자!"
아이들은 친화력이 진짜 캡이다.
나는 가만히 있고 싶었다.
"나중에 나중에!"
하지만 아이들은 막무가내로 나의 손을 잡아 당긴다.
"됐어 나좀 내버려둬!"
나도 모르게 천장을 뚫는 소리가 입에서 터져나왔다. 선생님들보다 훨씬 큰 형아가 소리를 지르니 어린 아이들은 놀라서 뒤로 넘어진다.
그리고 아이들이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두세아이가 마구 울어 대니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겁을 먹고 놀라서 울부짖는 소리에 선생님들이 뛰어 올라오셨다.
"무슨 일이야? 왜 무슨 일인데?"
나도 모르게 나는 큰소리로 말했다.
"애들이 나를 귀찮게 하잔아요.
나혼자 있게 해줘요."
왜 그리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뭐 그리 흥분할 일이 그다지 없었는데.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다시 조용해졌다.
선생님께서 "명석아 나 좀 보자."라며 나를 부르신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나를 내버려두시지'
쿵쿵 큰소리를 내면서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나에게 말씀하신다.
"명석아 나와 산책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