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지나가다가
신학생 2.5년간
무신론자 아니 불가지론자로 지냈다.
그러나 교회생활이나 신학생으로
삶을 중단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구도자(求道者)
혹은 구도자(究道者)가 되었을지 모른다.
"신은 존재하는가?
신은 누구인가?
나에게 신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질문은
"나는 존재하는가?
나는 누구인기?
나에게 나자신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예배당 내부를 지나가는데
무심결에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어느 전도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수십번 들었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나의 발걸음이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
왜? 우리를 사랑하셔서.
따지고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를 사랑하셔서."
수천번 들었던 이야기였다,
나도 가르쳐왔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날
나의 발걸음을 묶어놓았을까?
나는 한참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논리도 없었다.
나를 설득하려고 뱉어진 말은 결코 아니다.
이 말을 하는 그분은
복도에 내가 서 있는 줄도 몰랐다.
그분이 나를 향해 던진 말이
아니었다.
환청(幻聽)도 아니고
꿈을 꾼 것도 아니었다.
대낮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울과 같이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이
나를 향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가?
나는 그분(HE)이라고 확신했다.
그 말씀(THE WORDS)이
나를 사로잡은 것이다.
누군가에게 제시할 수 있는
증거(witness)도 없었다.
단지 내 안에 확증(確證)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이 일이 있은 후로부터
내 안에서 불가지론은 사라졌다.
죽을 병이 치유된 것도 아니고
로또가 당첨된 것도 아니고
목발을 짚어야하는 두 다리에
새 힘이 솟은 것도 아니다.
내 안에,
나와 더불어 그분이 함께 하신다는
부인할 수 없는 확신(確信)이
강하게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렇다고 신학(神學)을 공부하니
목회자로 부름받았다는 것과는
연결되지 않았다.
이후로 신(神),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깊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