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대학에 입학하다

태어나서 처음 학원을 다니다

합격자 발표가 났다.

대성학원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사실을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다.

학력고사를 준비하게 된 배경과

학원 시험을 치루고 합격하게 된 일까지.

아버지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었다.


1984년 1월 중순.

나는 학원에서 제공한 교재를 들고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신학교 졸업생이 재수생으로

바뀐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한 지 약10년만에

10수(十修)같은 재수(再修)를 시작한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엘리트(elite)반에

배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반은 소위 SKY대학에 지원했다가

실패를 맛본 친구들이 배정된 곳이었다.

어떤 친구는

삼수(參修) 또는 사수(四修)를

대성학원에서 한 모양이다.


"어!! 자네 또 왔니? 또 안됐니?

그냥 들어가지? 아이쿠!!"

선생님께서 알아보는 것으로 보아

대성학원 단골 또는 터줏대감인 듯하다.


사실 내 실력은 이 친구들과 함께

견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을

내가 잘 안다.

하지만 조카뻘이면서

(사실 조카도 고3이었다)

나보다 똑똑한 이 친구들의 생태(生態)에 대해

한번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않다고

생각했다.


대성학원에서 두어달.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이들의 눈빛은

살아있었다.

수업이 끝나도 어느하나 작은 미동(微動)도

없었다.

밤 10시까지 움직이지 않고

오직 공부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사실 당시 대성학원 2층에는

엘리트 반이 배치되어 있었고

3-5층은 일반반이 배치되어 있었다.

오후 5시 수업이 끝나면

3-5층 학생들은 요란한 이동을 한다.

"왜 저친구들은 이리 소란할까?"

"단과학원(單科學院)에 가서 영어 수학을

배우러가기 때문이에요."

"흠... 그런데 자녀들은 왜 안가니?"

"엘리트 반 친구들은 그냥 혼자해요."


나는 이들 사이에서 숨을 죽여가면서

열공에 빠졌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학원생활.

밤10시에 무거운 가방을 손에 들고

높은 계단을 올라 노량진 전철역에 도착하고

다시 계단을 내려가서

(최근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서

감회가 새롭고 옛날이 떠올랐지만)

전철에 몸을 싣게 되면

피곤함이 온 몸을 휘감았지만

그래도 기분만은 너무 들뜬 느낌이었다.


5월 5일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단다,


4월이 되었다.

대성학원에서는 매달 시험성적으로

승강제(昇降制)를 실시한다.

성적이 좋지않으면 엘리트 반에서

일반반으로 배치되는 제도이다.

1월부터 4월까지 엉성하게 버텼지만

4월말이 다가오니 내실력에 진도가

나가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학원을 그만두어야 하나?

학원공부가 좋지만 학원이 내성적을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이 때 엘리트 반 학생들이 회의를 시작했다.

"5월 5일 우리반 단합을 위해서

체육대회를 합시다."


학원에서도 이런 행사를 하나?

나는 학원을 그만두려고 생각하는데

단합대회라니?


이때 고려대학 법학과 2년을 다니고

군대를 다녀와서 서울대를 가겠다고

대성학원에 들어온 25살 된 친구

(이 사람은 나를 제외한 최고령학생이다.)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한다.

"형님. 학원을 그만두시더라도

체육대회는 꼭 참석해주시죠.

그리고 저와는 계속 교제했으면 좋겠습니다."


학원에서 이런 친구를 사귈 수 있다니.

다들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가려고

재수 삼수 하는데

이 아우는 무슨 꿈을 갖고 있길래

다시 입시학원을 다니는 것일까?


"저는 지금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서

누님 집에서 다니고 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니

누님이 기절을 하더라구요

어쨌든 잘 될 지 모르겠지만

다시 시작했습니다.

형님도 포기하지 마세요."


사람들은 참 다양하다.

꿈도, 나아가는 방향도,

걸어가는 과정도 ..

이런 친구도 있는데

부러워해야 하는지, 안타까워 해야 하는지.

하여튼 내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길로 가기위해 기꺼이 도전하는 모습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25세.

같이 공부하는 재수삼수하는

20~21세에 비하면 결코 적지않은 나이인데.


"형님에 비하면 저는 한참 어리지요."

28이 된 나를 보면

그는 이런 생각을 하나보다.


우리는 각자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아니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4월 말.

나의 첫번째 학원생활은 막을 내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