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다시는 만나기 어렵다."는
단순한 문장이었다.
아직 그녀의 이름을 알기도 전인데.
내 이름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색할 수 밖에 없는 시작이었다.
"차는 무엇으로?"
나는 화제(話題)를 돌렸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여인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커피요."
커피 한 잔의 위력은 대단했다.
다방아가씨가 커피 한 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는 시간부터
우리들의 대화는 이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 약속이 이루어질 줄 몰랐어요.
그쪽도 고민 많이 했겠지요.
어떻게 저 멀리서 이곳까지
나오시게 되었는지."
나는 솔직하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사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남자를
누군가 만나자고 부탁했다고 하여
경기도 끝자락에서 동대문 까지
찾아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나 같으면 그런 부탁은 새겨듣지 않았을텐데.
"사실 그 친구가
누군가 나를 보고싶다고 말했을 때
나도 물었지요.
그분이 나를 아냐고?
그랬더니 그분이 내 얼굴도
모른다는 거에요.
기가 막혀서.
그런데 제가 지금 이 자리에 나와있네요.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는데..."
서로 얼굴도 알지 못하고
실제로 본 적도 없는 두남녀가
햇살이 졸며졸며 문틈으로 기어드는
다방 안 색바랜 의자에 앉아
식어버린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설익은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커피 두잔을 주문했다.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라고 해도
이름은 알고 싶네요.
일단 저는 최철복입니다."
"다시 만날 일이 없을텐데.
좋아요 저는 민명옥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통성명(通姓名) 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서로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내가 한 살 많으니
그저 오빠 누이로 만나는 것이
어떨까요?"
그녀는 어이없어 했다.
'아니 이리 당돌할 수가!'
사실 나도 이분을
한번 만나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분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가
아무 것도 없었다.
후배도 이분에 대해서
미주알고주알 설명해 준 적도 없었다.
그러니 처음 얼굴을 보고
이제 통성명을 주고 받았는데
무엇을 더 진행해나갈 수 있을까?
그런데 "오빠와 오누이요?"하고
기가 막히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네 그럼 내가 동생을 해야하나요?"
나는 반문을 했다.
그녀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약 한 시간이 흘렀다.
처음 만난 여자.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라고
만나자 마자 선언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던 여자.
나는 그녀와 두시간 동안
만남을 이어갔다.
"마지막이 될까요?"
나는 헤어지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집 전화번호와 주소를
나에게 적어주었다.
동대문 지하철 지하도로
내려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떤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