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유는 더욱 아니고
37살에 결혼한 필규는 아주 날씬한 여자를 좋아했다.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쫓아나녔는지 모른다. 뒷모습이 날씬하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들이댔다. 물론 들이댄 숫자만큼 퇴짜를 맞았지만. 그러나 여자에게 들이대는 과정에서 필규에게 상처란 없었다. 수많은 여성 중에 필규를 좋아하는 "단 한 명의 여자"가 없을 것인가? 그 한 명을 만나기 위해서 어떤 대가도 치룰 준비가 되어있었다고 자부심을 가졌다. "내가 원하는 여성은 날씬하면 된다." 아주 간명한 기준이었다. 그러나 필규는 "키가 어쩌구저쩌구, 직장이 어쩌구저쩌구, 고향이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여자들이 자신에게서 돌아설 때마다 "내 짝이 아니라서 그래"하며 쿨 하게 헤어지곤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가 37살이 되었을 때 드디어 두살 아래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그녀는 날씬했다. 그리고 그녀는 필규를 좋아했다. 결혼식 날, 필규 부부는 피차 날아갈 듯 좋아했다. 특히 필규의 아내의 입술에서 웃음꽃이 사라질 줄 몰랐다. 그래서 하객들의 필규의 아내가 보여준 미소를 보면서 "신부가 저리 좋아하니 첫째는 반드시 딸 일꺼야."라고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말하곤 했다.
필규 부부는 금실이 좋았다. 사랑을 나누는 일에 거침이 없었다. 서로 아기를 원했기에 틈만 나면 사랑을 나누었다. 물론 병원도 다니면서 임신가능성에 대해 부부가 함께 노력했다. 미신(迷信)만 의지하지 않았지 과학적이고 정서적으로 해야할 과정은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날씬한 아내의 몸 상태가 임신하기에 적정한 것은 아니었고 필규의 정자상태도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낙천적인 필규부부는 "우리가 이처럼 사랑하고 있는데, 당연히 새생명이 우리에게 찾아올꺼야"하며 스트레스 받기 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자세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임신하게 되면 당신은 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 지나칠정도로 단순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서 누가 양육할 것인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비용충당은 어느 정도 해야 하는지, 아이는 어떤 사람으로 키워야하는지 등등 노트에 적어놓은 질문만 해도 365가지가 넘을 정도로 서로 묻고 대답하며 1년 2년 3년을 살아가고 있었다.
필규가 사십이 되고 결혼한 지 4년째 접어들면서 필규부부에게 작은 염려가 싹트기 시작했다
"나에게 정자의 운동이 여전히 활발하다고 하던데.. 당신의 난자도 정상이라고 했는데.."
의사는 필규부부가 임산하기에 걱정할 정도의 몸은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의사는 한 마디 던졌다.
"우리가 할 일은 여기까지 입니다. 상태를 확인하는 정도이지요. 새로운 생명은 육체적인 조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늘이 허락하셔야 하지요. 우리 모든 생명은 하늘이 주신 것입니다."
필규 부부는 병원을 나오면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 교회라도 다녀야 하는가? 신에게 생명을 달라고 기도해야 햐나?"
"여태까지 우리 마음대로 살다가 아기를 달라고 교회를 다니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것은 아닐까요?"
"뭐 그럴 수 있지. 그게 인간이 아니겠어요? 우리 인간이란 잘났다고 해 봐야 ... 다 그런 정도 수준이지요. 내가 바로 그런 존재라는 거에요."
"하긴 안되면....인간이란..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이지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 부처님 알라 산신령 등 온갖 신을 다 불러대면서 기도하더라구요... 그게 인간인가봐요. 그럼 우리 어떻게 하지요?"
필규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면 웃다가 심각해졌다가 다시 웃으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인공수정을 시도하라는 것도 아니고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게속 하라는 이야기인데...
"그래도 우리 서로 사랑하니까...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 하루 사랑해요."
필규 아내는 남편의 말을 들으면서 필규의 가슴 속으로 파고 들었다.
필규부부는 직장생활을 하고 정상적으로 사랑을 나누면서 서로를 향한 애정이 더욱 깊어졌다.
"여보 오늘 우리 회사 김대리 첫 아이 돌잔치에요. 다녀올게요 당신 쉬고 있어요."
필규의 말에 아내는 "우리는 다른 사람 결혼식, 돌잔치만 돌아다니고 있네요."라고 힘없이 대답한다.
"그래요. 그래도 우리 힘 내자구요"
필규는 집은 나섰고 필규 아내도 직장으로 발을 옮겼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깊어졌을 때 필규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고...말이 아냐...아이들 데리고 온 직원들 때문에.. 돌잔치가 아수라장이 되었어.
여거저기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부모들도 아이들 잡느라고 뜀박질 하고...게다가 조금 큰 아이들인 자기들끼지 뛰어다니다 부딪히고 싸우고...행사를 하는 것인지 밥을 먹는 것언지.. 정신이 쏙 빠졌네"
필규는 푸념을 하면서 양복을 벗어 소파 위에 던지고 쓰러진다.
필규 아내는 한마디 더 거든다.
"아이구 그렇게 키운 아이들.. 잘 자라야 할텐데..
그러나 저러나 우리 나이에 자녀를 갖게 되면 우리가 환갑이 되면 아이가 겨우 스무살이 될텐데..
우리가 육십살이 될 때까지 회사에서 잘리지 않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면 좋은데... 그 전에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자녀의 고등학교 대학교는 어떻게 감당해야 하지요?"
갑자가 아내가 던진 질문에 필규는 소파에서 일어나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네요. 여보.. 자녀를 무작정 낳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농능력과 양육에 대한 책임까지 생각하게 되면,...과연...... 게다가 우리 노후까지 고민하게 되면... 자녀를 갖는 것은 무책임한것이 아닐까요? "
"맞아요...우리가 이십대 후반이나 삼십대 초반도 아니도.. 그렇다고 박진영 처럼 퇴직 연령과 무관하에 돈을 벌면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서 이러저런 생각을 해 보았어요."
핋규는 아내의 말을 듣고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잠시 후..시계는 11시를 가리켰다.
"여보 우리 잠자리에 들 시간이에요. 그런데.. 자녀도 없는데.. 마치 자녀가 둘 정도 되어 미래르 걱정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보여지네요. 참.."
아내는 속살이 비치는 실루엣으로 갈아입고 침대로 들어오면서 "하긴 그래요.. 그래도 생각은 해 보아야 겠지요. 그러나 저러나.. 오늘도 우리 뜨겁게 사랑을 나누어요 나는 당신과 하나될 때 너무 좋아요."
필규는 아내의 옷을 조심스럽게 벗기면서 자신의 품으로 깊이 당겼다.
그날밤도 뜨거웠다.
필규 부부의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항상 침대시트를 세탁해야 할 정도로 지방으로 흠뻑 젖었다. 필규는 부부는 하루하루가 아까울정도로 격렬한 사랑을 나누면서 새로운 생명에 대한 기대를 한번도 잃지 않았다. 사랑을 하면서 아기에 대한 가치관에 대한 토론을 쉬지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필규는 사십대의 다리를 건넜다. 휘청거리는 다리를 올곳게 걸어가는 것, 필규는 아내의 격려가 아니라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필규부부는 새로운 시각을 갖기로 했다.
"여보! 꼭 아이를 낳을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하늘이 허락해야 하는 것이 분명한 것 같아요. 하늘은 우리에게 아이보다는 좋은 부부로 살아가게 하시는 것 같아요."
필규는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내는 매우 심각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남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가 아이를 낳기 위해 사랑한 것은 아니지요. 사랑해서 사랑하고 나눈 것이니까요. "
아내는 필규를 향해 의미심장한 말을 내놓았다.
그리고 약 새로운 달력이 벽에 걸렸다.
어느날 아내는 새벽기도를 다니기 시작했다.
"여보 신앙을 갖기로 했나요?"
필규는 아내에게 물었다.
"아니 신앙보다는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서요. 그리고 우리 부부가 무엇을 해야할 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서요."
필규는 아내가 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내의 등을 토닥거렸다. 필규는 "나도 함께 할께"하며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서너달이 지났다.
봄이 지나 여름으로 건너가던 어느 날
새벽은 이미 밝았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아내의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오는 날, 그 날은 발걸음에 힘이 있었다.
"여보 나... 오늘 새로운 음성을 들었어요."
필규는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의 눈은 갑자기 커지기 시작했다.
"당신도... 나도 그런데"
필규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내가 먼저 이야기 할 까요?" 아내는 길 옆 벤치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필규도 아내 옆에 앉았다. "하늘에서 말했어요. 너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고. 지금까지 아내를 사랑하듯이 자녀를 사랑하는 훌륭한 부모가 될 수 있다고." 필규의 말을 듣고 있던 아내의 입술이 조금씩 벌어지면서 옆으로 작은 공기가 드나들 수 있는 문이 만들어졌다. "여보 이제부터 남은 부분은 내가 말해도 되요?" 필규는 아내의 제안에 눈으로 대답했다. "네 몸으로 낳은 자녀만이 네 자녀가 아니다. 어짜피 세상의 모든 자녀는 내 자식이다 너는 내 자식을 잘 양육을 할 수 있는 훌륭한 부모가 될꺼야"
아내의 말을 들은 필규의 눈에는 기쁨으로 가득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떻게 우리가 같은 음성을 들을 수 있나요?"
두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말했다. "우리 행동에 옮깁시다.""